문서사료 4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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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장[고발인 민주통일민중연합 사무처장 김희택은 피고발인 치안본부장, 시경국장, 동대문경찰...
등록번호 : 00124044
날짜 : 1988.08.1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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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장[직권남용, 폭행혐의관련 치안본부장, 시경국장, 동대문경찰서장 고발]
등록번호 : 00213072
날짜 : 1988.08.1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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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장[고소인 정선훈 외5명이 피고소인 동대문경찰서장에게 보내는]
등록번호 : 00528826
날짜 : 1984.05.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장준영
요약설명 : 고소인 정선훈, 이재영, 홍종언, 서원기, 이경은, 김재황 6인은 5월 19일 민청련에서...
사진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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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총학생회가 경찰의 날을 맞아 동대문 경찰서 소속 전의경 1백여 명을 교내 축제에 ...
등록번호 : 00723477
날짜 : 1993.10.2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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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경찰서에서 지하철 파업 주동 관련 조사를 받는 단병호 전노협 위원장
등록번호 : 00743357
날짜 : 1989.04.1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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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하고 있는 경찰
등록번호 : 00700212
날짜 : 1960.04.1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종로4가 동대문경찰서 앞에 다다른 학생들은 대기하고 있던 무장경찰 약 100여 명의...
구술 컬렉션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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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면담자 : 박찬식, 김규리
일자/장소: 2010년 12월 1일/제주도 제주시 준다방
요약설명 : 때 서울에 있는 사단장 숙소에 심부름 왔다가 동대문경찰서가 불타는 상황 등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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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표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9. 10. 14 / 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동대문경찰서 정보과장 억류 사건, 배후조종자 지목, 단독 강제 입영,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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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식
면담자 : 이영재
일자/장소: 2010년 11월 23일/4‧19민주혁명회 복지사업단
요약설명 : 동대문경찰서 인근의 총격 현장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부정선거...
일지사료 1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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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시위대 습격한 깡패 한명도 체포 못해
일자 : 1960.4.18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습격사건 현장에는 100여 명의 경찰관이 있었으며, 동대문경찰서장은 사건현장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동대문경찰서장의 진두지휘로 백차 2대를 이용하여 이 난투극을 이리밀고 저리밀고 하여 해산시켰을 뿐이다. 깡패들은 시위대를 습격하기 위해 골목에 목재와 몽둥이같은 흉기를 실은 트레일러를 단 지프차를 미리 대기시켜놓았다고 한다.『동아일보』1960. 4. 19 석3면 이날 밤 경찰에서는 시위대에 섞여있던 하만수(20), 강신용(17, Y고 2년생)을 비롯하여 불량배 10여 명을 연행, 문초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대하여 유충렬 시경국장은 “고대생은 절대로 구속하지 않겠다. 고대생들이 돌아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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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된 연행학생들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시위도중 연행된 학생들은 치안당국과 학교 간에 타협이 이루어지자 즉시 석방되었다. 국회 앞에서 학생들을 해산하라고 설득하다가 실패한 유진오 총장과 교수들은 이들의 석방을 위해 직접 각 경찰서를 방문하였다. 종로경찰서 58명, 동대문경찰서 16명, 도합 74명이 석방되었다. 이들은 버스로 학교로 옮겨졌는데, 이중 10여 명은 석방즉시 농성이 진행 중인 국회 앞으로 갔다.『고대신보』1960. 5. 3 2면 ; 안동일·홍기범 공저,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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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설득으로 시위대는 학교로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유 총장은 마이크로 “종로경찰서에 연행된 58명과 동대문경찰서에 연행된 16명이 지금 막 석방됨으로써 오늘 시위의 희생자는 하나도 없다”고 말하자 또다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계속하여 유 총장은 “해도 기울어지고 있으니 이 이상 농성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고 하였다. 그는 이성을 상실치 않은 학생들의 시위를 치하하며,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간단히 말한 후 단에서 내려왔다.『조선일보』1960. 4. 19 조3면 계속하여 고려대 출신인 민주당 이철승 의원이 올라와 “나는 이철승이다. 가슴 아프고 눈물 난다”고 첫마디하자 또 박수가 터져 나왔다.『동아일보』1960. 4. 19 석3면그는 이어 “고대학생의 흥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