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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영송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박정수)
일자/장소: 2010년 8월 26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진명여고 삼일당 앞까지는 같이 진출했는데 경무대 어귀에 경찰관들이 총을 겨누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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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영
면담자 : 한찬욱
일자/장소: 2003.07.16. / 사월혁명회 사무실
요약설명 : 어린시절 성장과정과 영향을 받은 사람들, 4월혁명 당시 상황, 4월혁명이 일어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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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9. 8. 13 / 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장기표는 삼일다방에서 처음 만나 서로 강한 감화를 받아 그 인연을 평생 이어갔다....
일지사료 2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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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등학교 학생 1천여 명이 시위 감행
일자 : 1960.3.24
분류 : 시위 상황 > 부산
요약설명 : 문을 잠갔다. 서면 쪽으로 향한 제2진은 문현동에 있는 부산공고와 전포동에 있는 경남공고 정문 앞에 머물러 “마산사살 사건에 경찰관이 책임을 지라”, “ 학원에 자유를 달라”, “ 짓밟힌 민주주의를 바로잡자”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 합류를 호소했다. 그러나 학교 당국의 저지로 타교생의 합세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시위대는 서면일대를 돌고 시내로 향했다. 삼일극장 앞을 지날 무렵 출동한 경찰들이 곤봉으로 시위대 진압했다. 학생들은 근처 데레사여자고등학교 교정으로 들어가 경찰과 대치하다 오전 11시 10분 경 결국 학교로 돌아갔다.『부산일보』1960. 3. 24 석3면 ; 『마산일보』1960. 3. 25 3면 ; 『동아일보』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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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중·고등학교 학생 300여 명, 부정선거 규탄시위
일자 : 1960.3.25
분류 : 시위 상황 > 부산
요약설명 : 100명의 학생들은 다시 삼일극장으로 향해갔다. 삼일극장 앞에서 또다시 경찰의 제지를 받은 학생들은 30여 명만이 남아 동부산 경찰서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백차와 구급차에 의해 시위대는 완전히 해산되었고, 5명의 학생이 연행되었다.『부산일보』1960. 3. 25 석3면 ;『국제신보』1960. 3. 25 석3면 ;『마산일보』1960. 3. 26 2면 ;『조선일보』1960. 3. 25 석3면 ;『동아일보』1960. 3. 26 조3면 ; 안동일·홍기범 공저, 150-151쪽 ; 김재희 편, 77-78쪽 ; 조화영 편, 217 쪽. 연행학생의 숫자에 대해 일부 기록은 10명으로 기록하고 있다(안동일·홍기범 공저, 151쪽). 한편 오전 10시 경 데레사여자고등학교 학생 약 100여 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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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고등학교 학생들, 삐라 뿌리며 시위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부산
요약설명 : 바꾸었다. 그러나 경찰의 제지로 흩어져 제5방어선인 범일동 삼일극장 앞에서 이르렀을 때는 약 200명만이 남았다. 이곳에서 다시 충돌이 벌어져 경찰은 최루탄을 터뜨리고, 소방차는 붉은 물을 뿌리기 시작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학부형들은 “마산사건을 상기하여 보라”며 울상이 되어 있었다. 한층 더 완강해진 경찰의 제지에 학생들은 주저앉아 농성에 들어갔다. 이에 경찰은 학생들에게 협상을 제의하고, 연행된 학생들을 전원 석방하기로 약속하였다. 비로소 학생들은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질서정연하게 학교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경찰은 이들이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호위하였다. 한편, 온천장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