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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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유신헌법을 철폐하고 이에 부속된 인권유린의 모든 악법을 폐기하라]
등록번호 : 00874712
날짜 : 1979.11.1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深谷喜一郞
요약설명 : 유신헌법을 철폐하고 이에 부속된 인권유린의 모든 악법을 폐기하기 바란다. 1.반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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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유신헌법 철폐하고 긴급조치 해제하라]
등록번호 : 00578092
날짜 : 1978.05.1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금영균
요약설명 : - 유신헌법 철폐하고 긴급조치 해제하라 -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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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유신헌법 철폐]
등록번호 : 00837218
날짜 : 1978.09.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유신헌법을 철폐하고 일어나 민주헌법을 쟁취할 것을 주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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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시위, 6.26 광화문연합시위
요약설명 : 전개된 시위는 경찰기동대의 투입으로 진압되었다. 일부 학생들은 봉천동, 신림동 등지에서 '유신철폐'를 외치며 가두투쟁에 나섰다. 서울대 학생들은 학원민주선언에서 제시한 행동지침에 따라 5월 19일부터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6월 12일 서울대 시위는 6월 26일 광화문 가두시위를 예고한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3,000여 명의 학생들은 박정희 정권 퇴진을 외치며 3시간 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발표된 <학원민주선언>은 "6월 26일 오후 6시 세종로 네거리에서 서울시내 전 대학생과 시민이 집회를 갖는다."고 행동지침으로 제시하였다. 6월 26일 광화문 가두시위를 선전하기 위한 유인물 살포와 낙서가 곳곳에 행해져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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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는 양심을 낳고, 양심은 정의로운 사회를 낳는다_ 부산 양서협동조합
요약설명 : “유신헌법 철폐하라! 학원사찰 중지하라!” 마침내 부산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그동안 양서조합을 중심으로 역량을 키워왔던 많은 학생과 시민이 항쟁의 불길 중심에 선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자 호시탐탐 <양서협동조합>을 감시하고 있던 당국의 손길이 맨 먼저 조합 관계자들을 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보안사에 끌려간 중부교회 최성묵 목사를 비롯해 김광일 변호사, 김형기, 박상도 등은 지독한 고문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뜻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정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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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강하다 -민주화를 향한 문인들의 기개
요약설명 :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설립 1972년 10월유신 다음해인 1973년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재야인사들의 개헌청원운동이 시작되었다. 1973년 12월 24일 백범사상연구소가 서울 YMCA에서 개최한 '민족문학의밤'에서 함석헌, 장준하, 계훈제, 백기완 등 각계 민주인사들이 '개헌청원운동본부'를 발족시켰고, 열흘 만에 10만명의 서명을 받는 등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에 독재 정권은 12월 29일 대통령 담화를 발표하여 개헌서명운동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문인들은 1974년 1월 7일 ‘문인 61인 개헌지지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정부는 1월 8일 17시를 기해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및 헌법의 개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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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목사 7명, 유신철폐와 장기집권중지 요구
일자 : 1974.1.10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소장목사 7명이 김종필국무총리를 만나 “유신헌법 철폐”와 “장기집권 중지”를 요구했다.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83. 『1970년대 민주화 운동과 기독교』,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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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생, 구국기도회 후 교외시위
일자 : 1974.10.26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종로구 혜화동) 신학부 학생 300여 명은 26일 오전 교정에서 구국기도회를 열고 ①국민의 생존권과 기본권 존중 및 언론집회 결사의 자유 보장 ②유신헌법 철폐 및 민주헌정 회복 ③교회와 학원의 신성성 보장 ④지학순 주교 등 교직자와 교수 학생 등의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학생들은 기도회를 마치고 “기본 인권 회복하라”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교문 밖으로 나와 혜화동 로터리를 한 바퀴 돌면서 시위하다 경찰기동대가 쏜 최루탄과 가스차에 밀려 학교로 되돌아갔다.『경향신문』 1974.10.26. 7면; 『동아일보』 1974.10.26. 7면; 『조선일보』 1974.10.27. 7면. 다만, 『조선일보』는 이날 시위자가 2백여 명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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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대 연좌시위 진행
일자 : 1974.10.31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한국외국어대 학생 800여 명은 31일 낮 12시쯤 학교 별관 앞에 모여 ①유신헌법 철폐 ②학원사찰 중지 ③구속학생 석방 ④언론자유 보장 등 4개항을 결의하고 교문 안에서 연좌시위를 벌였다. 한편, 이들 가운데 일부 학생들은 후문과 정문 쪽 담을 넘어 가두데모에 나서려다 경찰의 가스차에 밀려 교내에 들어온 뒤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며 대치했고, 시위과정에서 나종성군(20·법정학부 1년) 등 2명이 머리를 다쳤다. 외대학보사 영자신문 학생기자 30여 명은 3층 학보사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가 이날 오후 7시쯤 교수들의 만류로 해산했다.『동아일보』 1974.11.1. 7면; 『조선일보』 1974.11.1.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