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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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厚洛이 韓赤會?諮問委員 宋建鎬선생에게 보낸 편지봉투]
등록번호 : 00043137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정순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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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및 월간조선 등 양대월간지에 전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씨의 73년말 김대중씨 납치사건...
등록번호 : 00431043
날짜 : 1987.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옥경
요약설명 : 등 양대월간지에 전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씨의 73년말 김대중씨 납치사건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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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 Robby.治幼에 있어서 人身 이용한 이후락 KCIA부장 사건
등록번호 : 00139210
날짜 : 19**.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사진사료 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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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조절위원회에 참가한 이후락 위원장과 박성철 평양측 위원장 대리
등록번호 : 00716700
날짜 : 1972.12.02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이로써 7.4공동선언 이후 남북사이의 제반문제를 개선, 해결하며 나라의 통일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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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조절위 1차회의에 앞서 담소하고 있는 이후락 위원장과 박성철 북측 위원장 대리
등록번호 : 00716701
날짜 : 1972.12.0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속개에 앞서 영빈관 귀빈실에서 담소하고 있는 이후락 위원장과 박성철 북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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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방문한 이후락 남북조절위 위원장
등록번호 : 00716703
날짜 : 1972.11.0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3일 이후락 위원장이 모란봉 을밀대에서 북한의 안내원으로부터 멀리 대동강의 흐름을...
사료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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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도 떨어뜨린다_ 공포정치의 산실 중앙정보부
요약설명 : 날이 갈수록 어둠 속에서, 어둠을 먹고 자라며 더욱 강해졌고, 더욱 잔인한 괴물로 변해갔다. ‘남산’이라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벌벌 떨었고, ‘기관원’이라는 말 한마디에 그 누구도 막을 자가 없었다. 심지어는 당시 여당이었던 공화당의 핵심 4인방인 길재호, 김성곤, 김진만, 백남억 같은 의원들도 끌려가 뭇매를 맞았고, 쌍용그룹의 창업자 김성곤은 그 유명한 ‘카이저 콧수염’을 모조리 뜯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정도는 약과에 불과했다. 김종필, 김형욱, 이후락 등 남산의 부장들이 차례로 바뀌는 동안 그곳은 본격적인 간첩 만들기 작업실로 변해갔다. 그리고 폭력은 잔인한 고문으로 변해갔다. 1973년 유신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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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요약설명 : 바꿔줄 좋은 방법이 없나?” 박정희의 말에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 예. 각하. 실은 내무부 장관이랑 한 가지 생각하고 있던 것이 있었습니다만...” “뭔가?” “예. 각하도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나라 농촌은 대단히 낙후되어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그동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도시 중심의 공업을 진작시키시는데 여념이 없었는데, 그래도 우리나라는 아직 농업국이고 국민들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거나 그 자녀들입니다.” “기래서...?” “그래서 농촌을 총동원하여 각성시키는 운동을 전개하시면...누가 시비할 사람도 없을거구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지지층을 확고히 해두는 데도 효과가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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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면 누구고 나와서 꺼야한다.‘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법정스님
요약설명 : 끝장 난 것이나 다름없었지요. 그래도 지금까진 눈치를 봐서 해왔지만 이제는 내놓고 하니 야단났지요. 이후락이란 자가 중앙정보부를 책임지면서 감시와 통제가 전에 없이 강화되었구요.” 장준하 선생이 특유의 열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하얗게 센 머리에 긴 수염을 기른 함석헌 선생은 눈을 감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곧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인 김대중을 이기고 나면 이제 더 이상 선거 같은 걸 치르지 않고 종신 집권을 하는 방법을 모색하려고 할 거예요.” “그러면.....?” 법정 스님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야 아직 알 수 없지만…… 모종의 음모가 꾸며지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장준하 선생의 그 날...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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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케네디 미 법무-박정희 회담 한일현안 조속 타결 촉구
일자 : 1964.1.19
분류 : 한일협정추진 > 한·미
요약설명 : 한미상호안전보장 문제, 국제정세전반과 군·경원(經援)문제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이후락청와대비서실장은 회담내용을 기자들에게 발표하면서 케네디 장관이 특히 한일국교정상화에 관하여 큰 관심을 표명했다고 말했다.『경향신문』 1964.1.20 석1면, 『동아일보』 1964.1.20 석1면·3면. 동아일보는 ‘케네디 장관 방한의 의의’라는 같은 날짜의 해설기사에서 케네디 장관이 한국 방문 전에 일본에서 이케다 수상과 회담을 하였음을 상기시키면서, 중공에 대한 프랑스의 국가 승인 의사표시가 중공의 위치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니만큼 미국으로서는 극동의 맹방인 한일 양국 간의 급속한 관계향상이 요구되며, 따라서 그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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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와대에 집결 무장병력과 대치중 최루탄 20발 발사
일자 : 1964.3.2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내무장관과 만나도록 했다. 엄 내무장관은 이들은 데리고 청와대로 들어갔는데 박 대통령은 만나지 못하고 이후락 비서실장을 만났다. 학생들은 이 실장의 “학생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는 확약을 받고 나와 하오 3시반 경희대, 동국대 학생들은 스스로 철수했다. 그러나 외국어대, 수송전기공고생들은 계속 남아 구호를 외쳤다. ▶25일, 서울 문리대생 500여 명은 “구속학생 즉시석방”, “매판자본가를 타살하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하오 1시 20분 교문을 출발, 원남동 로타리를 돌아 종로4가에 이르자 때마침 동대문서에 구속되었던 교우 30명이 전원 석방되어 함성을 올리며 이들 법대생 200명과 합류, 약 1,000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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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서울시내 대학생 대표 11명과 면담 ‘김-오히라 메모’ 공개약속
일자 : 1964.3.3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서울시내 11개 종합대학 학생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2시간 반 동안 면담했다. 이 면담에서 학생들은 그들의 주요한 주장인 평화선 문제, 청구권 문제, 외교자세 문제들을 중심으로 정부의 지나친 양보와 저자세를 추궁했으며, 박 대통령은 학생들의 의문점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마친 학생대표 중 구자신(24, 고대 경제학 4년)은 “박대통령은 국민들의 의혹을 사고 있는 김-오히라 메모를 31일이라도 외무부에 오면 학생대표들에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학생대표들은 한일교섭이 김종필의 독무대임을 강조, 측면교섭에서 물러나도록 요구했는데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