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4건
더 보기-
춘천경찰서 의암지서 경찰폭력사태 일지
등록번호 : 00076604
날짜 : 1984.07.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
춘천시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노태우 정권과 춘천경찰서의 기만적 술책에 분노한다
등록번호 : 00179892
날짜 : 1990.06.1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
춘천경찰서는 민중의 지팡이인가, 폭력배 집단인가
등록번호 : 00189313
날짜 : 1986.08.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사진사료 33건
더 보기-
한림대 맞은 편 동산에서 학생들의 집회를 감시하고 있는 춘천경찰서 정보과 형사들
등록번호 : 00914546
날짜 : 1990.00.00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김태현
요약설명 :
-
전경 뒤에 숨어 한림대 학생들의 시위 장면을 채증하는 춘천경찰서 정보과 형사
등록번호 : 00914613
날짜 : 1990.00.00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김태현
요약설명 :
-
가두 시위를 마친 후 늦은 밤 학교로 돌아와 정리집회를 하고 있는 춘대협 학생들
등록번호 : 00914312
날짜 : 1990.06.00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김태현
요약설명 : 새벽 춘천경찰서가 강원대학교 학생회관을 압수수색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경찰의...
사료 콘텐츠 2건
더 보기-
구술기록으로 보는 강원지역 4월혁명
요약설명 : 시위와 도지사 면담 4월 25일 춘천고등학교 학생 500명이 교정을 출발하여 춘천경찰서를 지나 도청으로 향했다. 3.15부정선거 이후 3월 21일에 계획되었던 춘천지역 고등학생들의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정보 누설과 관련자들의 연행으로 좌절된 이후 벌어진 첫 시위였다. 춘천고등학교는 당시 주‧야간 합쳐 1천5백 명 가량 되었는데 이중 1/3이 참여했으며 이는 학도호국단 체제에서 비상연락망을 통해 가능하였다. 도청에서 홍창섭 도지사와의 면담을 요청하였고 제비뽑기로 뽑힌 두 명의 학생들이 들어가 대면하고 요구사항을 전달하였다. 요구사항은 ‘학원에 정치적으로 간섭하지 말아라’ ‘수업을 조속하게 빨리 하자’ 이었다. 이 시위에는...
-
김주열을 아시나요? - 4.19 혁명
요약설명 : 기세에 겁먹은 경찰은 경찰서에 집결하여 총을 들고 겹겹으로 방어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부산도경에서 지원병력이 도착하자 마침내 시청과 경찰서를 중심으로 밤 9시 35분부터 일제히 사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선두에 섰던 두 명이 금새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시위대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여자들은 ‘유관순 누나’와 ‘3.1절 노래’를 불렀고,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는 광복절 노래도 나왔다. 밤 10시 20분, 일시 발포를 중지한 경찰과 시위대는 새벽까지 소강상태로 대치하였다. 시위대는 연좌하여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쳤다. 김주열 군의 등장으로 재점화된 4월 혁명의 전초전은 11일에 이어 12일,...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11건
더 보기-
⑦ 투표소와 기표소 구조문제
일자 : 1960.3.15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선거포기를 선언하고 퇴장하였다. 봉래1동 제1투표구, 신선동 제 1·2투표구, 초량동 제2·5투표구, 송도 제2투표구, 남항동 제2투표구, 수정동 투표구에서 같은 이유로 민주당참관인이 퇴장하였다. 강화 제3투표소와 파주군 위동면 제3투표소, 파주군 파평면 제3투표소, 양주군 백송면 제1투표소 등에서도 민주당참관인 좌석이 투표함과 멀어 자진 퇴장하였다. 경기도 여주군 개군면 제2투표소에서 민주당참관인이 기표소가 내통식이며 참관인 자리가 멀다고 항의하다 여주경찰서 소속 경찰의 배를 차서 공무집행방해로 연행되었다.『조선일보』1960. 3. 15 석1·3면,1960. 3. 16 조3면 ;『마산일보』1960.3. 16 1면 ;『동아일보』1960. 3. 16...
-
밤까지 번진 시위, 봉화 들고 질서 있게
일자 : 1960.4.25
분류 : 시위 상황 > 춘천
요약설명 : 행진하였다. 오후 7시 경부터 시내 봉의국민학교 교정에 모이기 시작한 이들은 선생님들로부터 시위는 해도파괴 폭행 등 불법행위는 절대 하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인 후 12개의 횃불을 든 학생들을 대오의 전후와 중간에 배치하고 행진하였다. 경찰서 앞에서 일부 학생들이 강제침입하려는 것을 간부급 학생들이 제지하며 “평화적인 데모는 우리의 자유이다”등 10여 가지 구호를 외치다가 8시 20분, 다시 춘천경찰서 앞에 이르러 대열을 정렬하였다. 경찰들은 경내에 배치되어 있었으나 자체경비만 하여 시위는 자유롭게 진행되었다. 경찰서 앞에서 구호를 외친 시위대는 계속하여 낙원동, 미 제4유도탄기지 사령부 앞을 거쳐...
-
강원도 첫 시위 발생
일자 : 1960.4.25
분류 : 시위 상황 > 춘천
요약설명 : 경 춘천경찰서 앞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도지사·시장·경찰국장·서장을불러오라”, “경찰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그러나 경찰서 정문 앞을 경비하던 수많은 경찰관은 일절 이를 간섭하지 않고 묵묵히 서있기만 하였다.『강원일보』1960. 4. 26 1면 ; 조화영편, 298-303쪽 ; 『동아일보』1960. 4.26 석3면 ;『조선일보』1960. 4. 25 석3면 이들은 11시 15분 경 학도호국단 노래를 부르면서 귀교 도중춘천서에 진입하기도 하였다. 이때 성수중·고등학교 학생 50여 명, 보인기술고등학교 학생 약간 명이 합세하였다. 다소 흥분한 학생들은 경찰 경비차에 투석하였으나 경찰들은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았다. 이어 시위대는 시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