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더 보기-
자유실천문인협의회문학인 101선언
요약설명 : 조건으로 중복사료 포함 총 203건이 검색되었으나 자실 결성 당시의 사료는 없다. 간접 관련 사료로는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 관련 사료가 4건이 검색되었다. 결성시기와 가장 가까운 자료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생산한 < 自由實賤文人協議會의 편지> (등록번호 : 479617) 정도다. 자실의 활동은 70년대 후반에도 왕성한데, <自由實踐文人協議會 第三宣言> (등록번호 : 86474), <77' 인권선언> (등록번호 : 512205), <국제펜클럽 시드니大會를 지켜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긴급성명> (등록번호 : 484908), <성명서-1978년도 '민족文學의 밤' 직후 백기완, 고은 씨 연행에 대한 성명서> (등록번호 :...
-
개헌청원100만인서명운동
요약설명 : 이 사건과 관련하여 약 20 건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으며 가장 중요사료로는 1973년 헌법개정청원운동본부에서 생산한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등록번호 : 115886)이다. 또한 개헌청원서명운동의 출발이 되었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관련 민주인사 15인의 연서로 작성된 <시국선언>(등록번호 : 85344)도 주목할 만 하다. 이후 1974년 말에서 1975년 초에 일어난 개헌서명운동 관련 성명서(등록번호 : 479695), 사진(등록번호 : 736421외 ), 신문스크랩(등록번호 : 484433외) 등도 찾아볼 수 있다.
사료 콘텐츠 2건
더 보기-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들불처럼 번진 유신헌법반대운동
요약설명 :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개헌청원운동 취지문’은 이 운동을 주도한 장준하가 낭독했다. “오늘의 모든 사태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완전히 회복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경제의 파탄, 민심의 혼란, 남북 긴장의 재현이란 상황 속에서 학원과 교회, 언론계와 가두에서 울부짖는 자유화의 요구 등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오늘의 헌법 하에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오늘의 헌법은 그 개정의 발의권이 사실상 대통령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 국민은 이와 같이 헌법 개정 발의권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고 우리들의 천부의 권리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대통령에게 현행 헌법의 개정을...
-
김대중납치사건-유신체제를 뒤흔든 뇌관
요약설명 : 시작했다. 1973년 10월 2일, 서울대 문리대생들이 유신반대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국은 강경조치로 일관해 180명 연행자 가운데 20명을 구속, 22명을 제적하고 18명을 자퇴시켰으며 56명을 무기정학에 처했다. 그러자 유신반대투쟁은 서울대의 각 단과대로 번져나갔다. 전국의 각 대학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이 경찰들과 투석전을 벌이자 이 시위에 고등학생들까지 동참했다. 민주화운동은 서울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전국 단위로 확대되었다. 1973년 12월 24일, 윤보선 전 대통령, 장준하 등 재야인사와 야당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등 30여 명이 공화당 정부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며 개헌서명운동을 벌였다....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3건
더 보기-
재야인사 30명, 헌법개정청원운동본부 결성
일자 : 1973.12.24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해치는 활동은 제재를 받을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서명운동에 제동을 걸고자 하였다. 또한 당국은 12월 29일 대통령 담화 발표를 통해 구체적으로 개헌운동 중지를 강경하게 촉구하였다. 김성진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문에서 대통령은 개헌청원서명운동에 대하여 ‘일부 지각없는 인사들’이 벌이고 있는 ‘사회혼란을 조성하려는 불순한 움직임’ 또는 ‘황당무계한 행동’으로 몰아붙이면서, 서명운동 추진자들에 대하여는 불순분자 또는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자로 운운하기도 하였다. 1974년 1월 7일 이희승, 이헌구, 김광섭, 안수길, 이호철, 백낙청 등의 문학인들은 오전 10시 서울 명동의 코스모폴리탄 지하 다방에서 문인 및...
-
광주지방 교회목사들, 개헌청원지지 시국선언
일자 : 1974.1.7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총무), 양림교회 목사 윤재현 씨(52) 등 광주지방 성직자 15명은 7일 오후 5시 광주 YMCA 회관에서 “유신체제는 인권과 국민의 주권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삼권분립 원칙에 입각한 자유민주체제의 헌법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한다”는 등 성직자 41명이 서명한 3개항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날 저녁 단식기도회를 갖는 한편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에 적극 호응키로 결의하고, 정부는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을 타파하고 국민 대중의 복지 증진에 힘쓰라고 촉구했다.『조선일보』 1974.01.08. 7면; 『동아일보』 1974.01.08. 7면; 『경향신문』 1974.01.08. 7면; 『부산일보』 1974.01.08. 7면;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83....
-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의 30인 발기인, 구속 및 연행
일자 : 1974.1.13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대통령긴급조치 제1,2호 선포에 따라 장준하, 백기완 씨가 구속되고, 함석헌, 천관우, 안병무, 문동환, 김동길, 법정, 김숭경, 김윤수, 계훈제, 이상순, 이정규 씨 등이 연행, 심문받았다.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83. 『1970년대 민주화 운동과 기독교』, 274쪽. 장준하·백기완의 구속 발표는 1월 15일자(『조선일보』 1974.01.16.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