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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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문 [전남재야개헌추진위원회]
등록번호 : 00968010
날짜 : 19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영춘
요약설명 : 직선제 개헌추진을 위한 모든 행동력을 집결해 행동화 한다는 것, 민중의 벗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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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헌법 실현 범기독교추진위원회 발족과 개헌서명자 명단을 공개하면서
등록번호 : 00107953
날짜 : 1986.03.1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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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사회민주주의 청년연맹 민주 헌법 개헌서명운동 추진]
등록번호 : 00968336
날짜 : 1986.02.2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영춘
요약설명 : 관망할 수 없어 사회민주주의 청년연맹은 범국민 민주개헌 서명운동 추진위원회를...
사진사료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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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개헌추진위원회 전북지부 결성대회에서 군사독재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등록번호 : 00907008
날짜 : 1986.05.3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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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개헌추진위원회 전북지부 결성대회. 전주시위
등록번호 : 00907009
날짜 : 1986.05.3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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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개헌추진위원회 전북지부 결성대회. 전주시위 모습
등록번호 : 00907010
날짜 : 1986.05.3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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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포그 연기 자욱했던 오월 속으로_ 5.3인천민주항쟁
요약설명 : 것은 처음이었다. 오늘은 야당과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서 추진하는 신한민주당 개헌추진위원회 인천·경기지부 결성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3월 11일에 서울에서 시작된 개헌 현판식은 봄소식과 함께 남쪽에서부터 쓰나미처럼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화의 요구에 목말랐던 대중은 야당이 추진하는 합법적인 행사에 편승해 갈수록 열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3월 23일 부산에서 시작하여 3월 30일 광주YMCA에서 벌어진 행사는 야당 행사라기보다는 민중대회에 더 가까웠다. 무려 30만 가까이 모인 민중들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숨죽이며 얼어 붙어있던 두려움과 어둠을 깨치고 비로소 자기 가슴 깊숙이 숨겨져 있던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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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과 권력 사이 - 어느 야당의 선택
요약설명 : 다가오는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직선제로 실시할 것을 주장하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과 함께 '1천만 명 개헌서명운동'을 시작했다. 3월 11일 ‘개헌추진위원회 서울지부 결성대회’를 시작으로 '1천만 명 개헌서명운동'에 본격 돌입했다.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집회에서 강하게 표출되었다. 신한민주당의 지역순회 집회는 3월 23일 부산집회에 10만 명, 4월 19일 대전집회에 10만 명, 26일 청주집회에 2만 명,5월 3일 인천집회에 10만 명, 10일 마산집회에 5만 명, 31일 전주집회에 1만 명이 참여했다. 신한민주당의 옥내집회가 끝나면 옥외 군중들은 항상 민통련을 비롯한 민주인사, 대학생들과 시위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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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향한 열망
요약설명 : 내 개헌불가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어 법무부는 헌법논의를 빙자한 범법행위에 대해 엄벌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천명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은 1983년 2·12 총선 후 본격화되기 시작한 직선제 개헌논의를 봉쇄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개헌논의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1986년 2월 4일 서울대학교에서 15개 대학 1천여 명이 모여 ‘파쇼헌법철폐투쟁대회 및 개헌서명운동 추진본부 결성식’을 개최하였고, 12일에는 신민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으로 ‘1천만 개헌서명운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5일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 가맹 23개 단체와 각계 민주인사 303인의 이름으로 ‘군사독재 퇴진...
일지사료 1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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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일부, 국회 해산 후 재선거 주장
일자 : 1960.4.27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현행헌법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이번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대표와 변호사대표, 공명선거추진위원회대표, 비자유당계 정당대표 등 100명으로써 비상입법의회를 구성하여 새로운 내각책임제개헌을 단행해야 한다고 그의 사견을 말하였다. 또한 비상입법의회의 구성과 함께 현 4대국회는 해산해야 된다고 말하였다. 민주당 선전부장인 조재천 의원은 현재의 국회를 해산하고 현행헌법 하에서 정·부통령을 선출, 그 뒤 짧은 시간 차를 두고 국회의원총선거를 실시하자는 사견을 말하였다. 또 개헌 후에 정·부통령선거를 하더라도 이번만은 직선제를 채택하는 것이 좋으며, 만약 다수의원이 동조한다면 26일의 국회결의를 뒤집어서라도 개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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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일부, 국회 해산 후 재선거 주장
일자 : 1960.4.27
분류 : 내각책임제 개헌과 악법개정
요약설명 : 채택하는 것이 좋으며, 만약 다수의원이 동조한다면 26일의 국회결의를 뒤집어서라도 개헌 전에 정부통령선거를 하는 편이 더 떳떳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민주당의 주요한 정책위원회 의장은 이날 오전 4.26사태를 ‘혁명’이라고 규정한 뒤, 현행 헌법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이번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 대표와 변호사 대표,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대표, 비자유당계 정당 대표 등 100명으로써 비상입법의회를 구성하여 새로운 내각책임제 개헌을 단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비상입법회의 구성과 함께 현 4대국회는 해산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주요한 의원의 주장대로 하면 비상입법의회의 개헌까지는 무정부의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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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오 등, 개헌통과추진위원회 성명서 발표에 이름이 도용되었다고 해명
일자 : 1960.6.3
분류 : 내각책임제 개헌과 악법개정
요약설명 : 3일, 유진오(고려대 총장)·장리욱(전 전국공명선거추진위원장)·이상은(고려대 교수)·정석해(연세대 교수)·이희승(서울문리대 학장)·조윤제(성균관대 대학원장) 등은 각 일간지의 6월 2일자 조·석간에 게재된 개헌통과추진위원회의 성명서에 그들의 이름이 도용되었다고 해명하였다. 2일 각 일간지에 게재된 이 성명서는 김주영이라는 사람이 광고로 의뢰한 것이라고 한다.『조선일보』 1960. 6. 3 석1면. 개헌통과추진위원회의 성명서는 『동아일보』 1960. 6. 2 석1면 ; 『조선일보』 1960. 6. 2 조1면 광고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