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9건
더 보기-
호소문-광주시민 여러분의 지지와 격려가 없다면 저희는 영원히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읍니다
등록번호 : 00062499
날짜 : 1988.08.0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역사학연구소
요약설명 :
-
호소문-광주시민 여러분의 지지와 격려가 없다면 저희는 영원히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읍니다.
등록번호 : 00107480
날짜 : 1987.08.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광주시내버스운전자들의 권익을 위한 호소문
-
영원히 타오르는 불길-광주학생독립운동
등록번호 : 00886715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1920년대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양상과 사건의 지역적 배경, 이후 번진 항일투쟁 등의 ...
영상사료 2건
더 보기-
Isang Yun-CANTATA "MEIN LAND, MEIN VOLK", "EXEMPLU...
등록번호 : 00964263
날짜 : 2005.03.17
구분 : 문서류 > 음성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참여한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와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가 수록되어...
-
[광주여 영원히!-Exemplum,in Memoriam Kwangju(표본,광주의 회상)]
등록번호 : 00548789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음성
기증자 : 한국YMCA전국연맹
요약설명 : Memoriam Kwangju(표본,광주의 회상) B면:Teile dich,Nacht!(밤이여,그치라!).
사료 콘텐츠 8건
더 보기-
동백림의 추억
요약설명 : <광주여 영원히> 등을 들려주며“나는 아무래도 CD보다는 레코드판으로 듣는 게 더 좋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의 음악은 난해했고, 전통적인 화성(和聲)에 익숙한 필자의 귀엔 몹시도 불친절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당시 내겐 음악 보다는 그가 온몸으로 맞았던 역사성에 더 관심이 많았다. 카리스마와 권위가 몸에 베인 예술가로 내게 남아 있던 그는 서울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동백림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물리학자 정규명 선생(유럽민협 의장 역임)은 운동을 하며 가깝게 모신 분이기에 많은 기억이 있다. 그는 생계유지를 위해 조그만 두부공장을 운영했는데, 작업장에서 넘어져 오랫동안 마비된 몸으로 병상...
-
5·18민주화운동 사진전과 개인 기록물
요약설명 : 대항하는 시민들을 모습, 항쟁 전개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광주시민은 이 비극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광주 사태는 비상계엄 하의 언론통제로 철저히 진실이 왜곡되어 어떤 경우에는 사실이 정반대로 전달되고 있다. 광주사태의 진실은 영원히 역사에 새겨질 것이다 … 이 보고는 극히 한정된 상황을 사실에 입각하여 기록한 것이다 … ” “… 공수특전단 소속 군인들은 이날 오후 4-5시경 군인트럭을 타고 시내 중심가에 들어와 데모학생들을 M16 개머리판과 방망이로 무차별 구타하여 연행했다. 군인들은 학생들이 피흘리며 쓰러지면 구둣발로 짓이긴 후 군인트럭에 집어 던진후 머리를 수그리게해서 굴비를 쌓아놓은...
-
권종대_농민운동사의 험로를 개척한 작은 거인
요약설명 : 나빠지고 집안은 더욱 빈한해졌으나 그의 투쟁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1994년 ‘5.18진상규명과 광주항쟁정신계승 국민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여 5.18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활동을 벌이던 권종대는 그해 겨울 국회의원 선거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고 고향에 내려간 뒤 간암 수술을 받았다. 2004년 지병이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권종대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산소 호흡기를 떼어낸 뒤 존엄하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숱한 문학서적을 독파하며 시를 썼고, 훗날 전농 의장이 되어 정보 당국에 쫓길 때에도 일기와 수필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
일지사료 3건
더 보기-
중앙정보부, 민청학련 배후에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가 있다고 발표
일자 : 1974.4.25
분류 : 정치·국제관계 > 정부·여당
요약설명 : 긴급조치 7호에 대한 항의성명 발표. 피고인의 당연한 재심기회 주지 않고 전격적 형의 집행으로 사건에 대한 의혹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과 긴급조치 7호는 현 정권이 비상수단 아니면 학원사태 해결할 능력 없다는 것 입증했다고 비난. 11일 동 성명서 관계로 국민회의 대변인 함세웅 신부 연행조사 -1975년 10월 15일 : 인혁당 관련 수감자 장석구(47. 징5년, 도피방조죄), 뇌일혈로 옥사사건 관련자(21명)사형 : 서도원, 도예종, 하재완, 송상진, 이수병, 우홍선, 김용원 무기 : 김한덕, 유진곤, 나경일, 강창덕, 이태환, 전창일, 이성재 징역 20년, 자격정지 15년 : 김종대, 이창복, 조만호, 이재형, 정만진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 :...
-
안동교구 사제단, 교구사제들의 구속에 항의하는 결의문 배부
일자 : 1977.10.26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우리 신부님들이 연행되실 때도 바로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승리하셨으니 우리도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시작된 십자가의 길을 주님처럼 우리도 져야 하겠습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쓰러지면 또다시 부축을 받으면서 일어나는 용기와 힘,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억압하는 이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당하고 있는 서글픈 현실을 개탄하는 우리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교형자매 여러분께 비통한 우리의 심정과 비장한 각오를 전해 드리면서 더 큰 이해와 기도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우리 주 천주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세세에 영원히. 아멘. 1977년 10월 26일 안동교구 사제단
-
구속학생 가족 김판봉 목사, 탄원서 발표
일자 : 1979.6.5
분류 : 민주화운동 > 인권
요약설명 : 월경에 추가 기소되어 광주지법에서 2 년형을 받았는데 공소문에 의하면 제 자식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긴급조치 철폐하라" “유신헌법 폐지하라”고 5, 6차 소리를 질렀다는 것입니다. 학업에 열중하던 학도가 신앙을 고백한 것이 법에 저촉되어 의외의 중형을 받고 보니 한없는 신앙적 고통을 느껴서 소리지른 것이 2년 추가형이 되어서야 형을 면하고 생존할 자 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타 법정에서 전술한 것과 똑같은 말을 토로한 것이 추가형의 원인이 된다면 그 누구도 영원히 추가를 되풀이하여 출옥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로서 추가를 취소하고 즉시 석방하여 주시기를 탄원합니다. 2. 제 자식은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