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5건
더 보기-
[서형제 구제활동 경과보고]
등록번호 : 00576889
날짜 : 1974.06.0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Seiichi Shiryanagi
요약설명 : 교련반대시위를 잠재우고 대통령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보안사령부가...
-
교련통신 제17호
등록번호 : 00855924
날짜 : 1988.11.05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최교진
요약설명 : 전문화로 가능하다 등 기사수록 전교협의 교육민주화운동을 반대하던 대한교련...
-
자유의종 제10호
등록번호 : 00883774
날짜 : 1971.03.2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교련반대 공동투쟁 결의 - 언론화형식-23일, 서울 법대에서 등 자유언론투쟁 소식과...
사료 콘텐츠 3건
더 보기-
법위의 행정명령, 위수령
요약설명 : 것이 첫 사례이다. 이후 1971년 교련반대시위가 고조되고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자 10월 15일 서울시 일원에 위수령이 발동되었고 서울 시내 대학에 위수군이 투입되었다. 세 번째가 1979년 10월 20일 마산 일원에 내려진 것으로 부마항쟁 당시 위수령이 발동되었다. 위수령은 1965년 최초 발동 시부터 위헌 논란이 제기되었다. “법조계에서는 위수령이 선포된다고 할지라도 군은 군에 속하는 건조물이나 기타 시설물 유지에 필요한 소극적인 치안 권한밖에 행사 할 수 없기 때문에 민간의 치안 유지 특히 시위진압을 위해 학원에 난입하는 등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곧 헌정질서 파괴라고 비난하였다.” (조선일보 1965년 8월 26일자)...
-
혁명 이념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전사 시인 김남주
요약설명 : 1964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합격한 그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 반대하여 이듬해 자퇴를 결행하며 자신의 소신을 행동으로 옮겼다. 1969년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학교 문리대 영문과에 입학한 그는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한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은 노동자를 착취하여 소수의 부유층을 살찌게 했던 박정희 정권의 추악함에 맞선 거대한 항거의 씨앗이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지식인과 노동자가 연대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된...
-
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연대운동을 일구어 나갔다. 조국의 민주화에 몸을 바친 합수(合水) 윤한봉은 1948년 2월 1일 전남 강진군 칠량면 동백리에서 태어나, 광주일고를 거쳐 1971년 늦은 나이에 전남대학교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그해 12월 30일 교련반대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에게 끝없는 고난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이제 공부는 끝이다. 나는 앞으로 목숨 걸고 저놈들과 싸우겠다!”라고 선언한 그는 전남대 학생 동아리인 민족사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후배 정상용 등과 더불어 사회과학 공부와 학생운동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1974년 4월 들어 윤한봉은 민청학련사건으로 유신헌법반대시위를...
구술 컬렉션 12건
더 보기-
김승호
면담자 : 임송자
일자/장소: 2010.11.23.(1차), 2010.11.26.(2차)/사이버노동대학
요약설명 : 입학과 학생운동, 3선개헌반대운동, 교련반대운동, 위수령과 강제징집, 졸업 후 성남...
-
이신범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9. 8. 2 / 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1971년 교련철폐투쟁은 서울대 문리대, 법대, 상대 3개대 학생회를 운동권이 장악하고...
-
김승균
면담자 : 송철원
일자/장소: 2019. 7. 21 / 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남북교류운동에 이르기까지 반독재투쟁과 통일운동에 진력한 대표적 인물이다. 《사상...
일지사료 17건
더 보기-
서울대 문리대생 1백여 명, 교련반대 성토대회 개최 및 석방운동 토의
일자 : 1971.4.9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9일 오전 11시 15분경 서울 문리대생 1백여 명은 4·19탑 앞에 모여 교련반대 성토대회를 갖고 경찰에 연행된 학생들의 석방운동에 관한 토의를 벌였다. 12시 45분경 교관실에 들어가 교관 3명을 강제로 끌어내 교문 밖으로 내보내고 교문을 잠근 후 “학교자유 만세”를 외쳤다. 학교당국은 교수와 교직원들이 교문을 열고 교관들을 대학본부로 데려가 보호하는 절차를 취했다. 이어 학생들은 낮 1시 20분경 문리대 운동장 동편에 신축 중인 무기고로 장소를 옮겨 무기고 기둥을 콘크리트로 세우기 위해 틀을 짜놓은 판자를 일부 뜯어내 스탠드 옆 운동장 북쪽 구석에서 불태우고 오후 2시부터 1백여 명이 돌을 들고 교문 앞 길에서 연좌데모를...
-
고대에서 교련철폐운동으로 단식농성 결정 및 정부에 요구사항 제시
일자 : 1971.4.16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11시 반 대강당에 모여 교련철폐운동을 단식농성으로 하는 등의 6개항 결의문을 채택했다. 학생들은 교련반대운동의 방법을 두고 1시간 반 논의 끝에 이같이 결정했다. 또한 학생들은 정부당국이 15일 교정에 최루탄을 던진 책임을 지고 4월 혁명기념일 행사의 일환으로 전국 대학생 대표들과 국방·문교장관이 공개군사교육토론회를 19일 상오 11시 고려대 강당에서 열 것을 요구했다. 또 민주수호투쟁위원회는 앞으로 조국의 민주수호를 위해 조용한 분위기와 학원질서 수호의 범위 내에서 공명선거 캠페인을 벌이고 교련철폐투쟁은 단과대 학생회장단으로 구성되는 군사교육 철폐 대책위를 구성, 수강거부운동을 계속하기로 했다.『경향신문』...
-
중앙대학교 학과장회의에서 교련반대운동에 대한 대책을 논의
일자 : 1971.4.19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19일 중앙대학교에서 학과장회의가 개최되었다. 본 회의에서는 학생들의 교련강화반대운동에 대한 대책을 비롯하여 중간시험 실시에 관한 감독 방안 등이 토의되었다. 이날 학과장회의에서 교련강화반대운동에 대한 토의에서 중간시험이 끝난 후 학생들에게 의사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도록 할 것과 시험기간 중 소란을 피운 자에 대하여는 엄단할 방침을 굳혔다.『중대신문』 1971.4.22.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