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7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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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교련 탈퇴운동을 전개해 갑시다.
등록번호 : 00027541
날짜 : 1989.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윤영규
요약설명 : 1.교련은 과연 교사를 위한 단체인가? 2.대한교련 탈퇴운동은 왜 전개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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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문[교련문제]
등록번호 : 00480078
날짜 : 1971.04.1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학원내 교련 및 군사교육, 학원사찰 등을 비판하는 내용. .선언문-학원의 신성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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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문[교련의 완전철폐를 주장]
등록번호 : 00480081
날짜 : 1971.04.1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학원내 교련 및 군사교육, 학원사찰 등을 비판하는 내용. -교련의 완전철폐를 주장...
사진사료 2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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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단에 1주간 입소하여 기초훈련 중 사격술을 익히는 여고 교련 교사들
등록번호 : 00723899
날짜 : 1976.01.1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여군단에 1주간 입소하여 각종 기초 군사 훈련 중 사격술을 익히는 여고교련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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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교련 초청, 문교부 장관 및 교사와의 대화
등록번호 : 00712254
날짜 : 1989.08.3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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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교련거부 학생 구제에 따라 1일부터 시행되는 수강신청접수 소식을 주고받는 서울대생들
등록번호 : 00712566
날짜 : 1971.10.2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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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념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전사 시인 김남주
요약설명 : 된 김남주는 한일회담 반대와 교련반대운동, 3선개헌저지투쟁, 노동삼권 보장운동 등에 앞장섰다. 1972년에 김남주는 친구 이강과 더불어 유신헌법에 맞서 전국 최초의 지하신문 《함성》지를 제작하여 반독재 민주화의 선봉에 섰다. 경찰의 감시를 피해 서울에 온 김남주는 지하신문 이름을 《고발》로 바꾸어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다 이듬해 체포되었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은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총구가 나의 머리숲을 헤치는 순간/나의 양심은 혀가 되었다 /허공에서 헐떡거렸다 똥개가 되라면 /기꺼이 똥개가 되어 당신의 /똥구멍이라도 싹싹 핥아 주겠노라 /혓바닥을 내밀었다.” 〈진혼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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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거쳐 1971년 늦은 나이에 전남대학교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그해 12월 30일 교련반대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에게 끝없는 고난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이제 공부는 끝이다. 나는 앞으로 목숨 걸고 저놈들과 싸우겠다!”라고 선언한 그는 전남대 학생 동아리인 민족사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후배 정상용 등과 더불어 사회과학 공부와 학생운동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1974년 4월 들어 윤한봉은 민청학련사건으로 유신헌법반대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죄, 내란예비음모죄,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죄 등으로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서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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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위의 행정명령, 위수령
요약설명 : 것이 첫 사례이다. 이후 1971년 교련반대시위가 고조되고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자 10월 15일 서울시 일원에 위수령이 발동되었고 서울 시내 대학에 위수군이 투입되었다. 세 번째가 1979년 10월 20일 마산 일원에 내려진 것으로 부마항쟁 당시 위수령이 발동되었다. 위수령은 1965년 최초 발동 시부터 위헌 논란이 제기되었다. “법조계에서는 위수령이 선포된다고 할지라도 군은 군에 속하는 건조물이나 기타 시설물 유지에 필요한 소극적인 치안 권한밖에 행사 할 수 없기 때문에 민간의 치안 유지 특히 시위진압을 위해 학원에 난입하는 등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곧 헌정질서 파괴라고 비난하였다.” (조선일보 1965년 8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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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 문교부장관, “교원노조 불필요”
일자 : 1960.5.19
분류 : 노동운동
요약설명 : 19일 오후, 이병도문교부장관은 교원노조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장관은 “대한교련의 민주적인 정관 개정으로 노조에 대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교원노조는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동아일보』 1960. 5. 20 석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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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고등학교 교원노조, “문교부장관에게 보내는 항의문”
일자 : 1960.6.22
분류 : 노동운동
요약설명 : 수 있다)에 의하여 문교부관리, 교원 등으로 조직된 교육회와 대한교련은 즉시 해산시켜야 타당할 것이 아닌가? ② 각 급 학교와 문교관리들이 공무를 중단하고 집단적으로 교육회 또는 교련총회에 참가하여 결의 등 행동을 하는 것도 공무인가? ③ 교통부와 체신부의 공무원들은 노조법 제6조 1953년 9월 6일자 법무부 해석에 의하여 노조를 조직하고 그 실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유독 교원만이 노조를 결성할 수 없다함은 무엇인가? 二. 교육공무원법 제41조 및 제27조에 의하여 사학교원에까지 국가공무원법 제37조의 준수를 강요한다면 ① 교육공무원법 제32조에 의하여 65세 이상의 사학교장 및 교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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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초등교원노조원들, 문교부장관의 교원노조 해체발언 규탄시위
일자 : 1960.6.23
분류 : 노동운동
요약설명 : 23일 오후 부산 초등교원노조원들은 동광국민학교에 모여 이병도문교부장관의 교원노조 해체명령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 장관의 교원노조 해체명령을 규탄하고 대한교련 해체 등을 주장하며 플래카드를 들고 시내를 행진하였다.『조선일보』 1960. 6. 24 조3면 ; 『동아일보』 1960. 6. 24 석3면 ; 『영남일보』 1960. 6. 25 조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