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8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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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선생 기증사료집 머리말 및 목차]
등록번호 : 00577501
날짜 : 2003.06.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도현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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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정부,기업,노동자,국민에게 바란다]
등록번호 : 00429527
날짜 : 1987.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도현
요약설명 : 최근 노사문제와 이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심각한 위기를 조성하고 있음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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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종철군 국민추도회준비위원회 위원장회의 발표문-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에 즈음하여...
등록번호 : 00429544
날짜 : 1987.02.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도현
요약설명 :
사진사료 5건
더 보기박물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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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한일회담반대투쟁
요약설명 : 총 19건이 검색되었다. 당시의 주요사료로는 당시 시위 참여자이자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의 김도현이 기증한 한일굴욕회담반대학생총연합회 명의의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檄文> (등록번호 : 578373), <弔 反民族的 非民主的 民族的民主主義 葬禮式> (등록번호 : 578390) 와 생산자 미상의 결의문 <일본 예속으로 직행하는 매국적 한일굴욕회담을 전면 중지하라!> (등록번호 : 578372)가 있으며, 6.3동지회가 생산한 <6.3 포럼 창간호> (등록번호 : 161613) 등으로, 문서사료는 많지 않다. 이에 비해 사진사료는 비교적 풍부하며 주로 경향신문사 생산사료들이다. <한일국교정상화회담을 굴욕회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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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민주주의’ 장례식
요약설명 : ‘김도현’ 조건으로 총 126건, ‘김중태’ 조건으로 총 10건이 검색되었다. 직접적인 시위 주동자였던 김도현이 기증한 한·일굴욕회담반대학생총연합회 명의의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檄文> (등록번호 : 578373)과 <弔 反民族的 非民主的 民族的民主主義 葬禮式> (등록번호 : 578390), <五·一六을 聲討한다!> (등록번호 : 578392), 선언문 <굴욕적 한일회담의 즉시 중단을 엄숙히 요구한다> (등록번호 : 578391), 결의문 <일본 예속으로 직행하는 매국적 한일굴욕회담을 전면 중지하라!> (등록번호 : 578372), 서울지방검찰청의 <공소장 변경[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 관련]> (등록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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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3일시위
요약설명 : ‘한일회담’ 조건으로 총 471건, ‘6·3’ 조건으로 총 219건이 검색되었다. 당시의 주요사료로는 6.3동지회가 생산한 <6.3 포럼 창간호> (등록번호 : 161613) 등으로, 문서사료는 많지 않다. 이에 비해 사진사료는 비교적 풍부하며 주로 경향신문사 생산사료들이다. <한일국교정상화회담을 굴욕회담으로 규정, 전국적 반대 운동의 시발점이 된 6.3 운동 당시 모습> (등록번호 : 723198), <한일회담 결사 반대를 외치며 가두시위에 나선 서울대학교 학생들> (등록번호 : 742493), <서울 시내에서 열린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을 연행해가는 경찰들> (등록번호 :742418), <6.3 출옥 학생과의 간담회...
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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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민주항쟁, 같은 기록 그러나 다른 기록
요약설명 : 한 '김도현 선생'이다. 김도현 선생은 민주화추진협의회의 주간으로 활동하면서 박종철군 국민추도회 준비위원이기도 했다. 그리고 두번째 기록의 생산자는 우리나라 제 14대(김영삼), 15대(김대중)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김영삼'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들은 당시 민추협 공동의장이었으며, 국민추도회에서 일곱번째 연사로 위의 기록을 바탕으로 추도사를 한다. 두 기록의 생산자를 다르게 표기한 이유이다. 다시 표제가 같은 두개의 기록이 있다. "이 정부는 고 박종철군을 고문 살인하고 그 범인마저 은폐 조작하였으며, 온 국민과 함께 약속한 민주개헌을 얼토당토 않는 이유를 달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독재헌법의 옹호와 이에 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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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추진협의회 일지 발간
요약설명 : 일지'로 출판하였습니다. 사료관은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 역사정리사업'을 통해 민추협의 활동 당시 회무일지와 언론기사를 중심으로 수집하였고 일지로 차곡차곡 정리하였습니다. 3년간 편집위원회를 운영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운 노력은 849페이지의 두꺼운 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민추협과 연관된 사진과 성명서 등 다양한 사료를 수록하려 하였으나 지면 관계로 부득이 넣지 못한 부분이 아쉽습니다. 이번 발간이 앞으로 민주화운동 역사 정리를 위한 귀한 토대가 되길 바랍니다. '민주화추진협의회 일지' 발간을 위해 함께 협력해 주신 김도현 편집위원장과 편집위원, 민추협 회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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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과 국본> 발간
요약설명 : 있던 풀뿌리 민주주의 인사들의 활동으로 가능하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도현 - 소홀히 취급되었던 6월항쟁에서 민추협의 활약상을 재조명하다 6월항쟁은 전 국민적 항쟁이었다. 당시 야당 정치세력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직선제 개헌 이후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과 그로 인한 대통령선거 패배로 인해 야당세력은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아가 양김을 중심으로 한 정치인들의 투쟁 거점이었던 민추협회의 6월항쟁에 대한 공헌과 그 활약 또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민추협의 대표로 국본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김도현 씨의 ‘6월항쟁과 민추협’은 6월항쟁에 참여한 야당정치 세력...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3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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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함안군에서 학생들의 반혁명세력 규탄시위 발생
일자 : 1960.7.25
분류 : 학생의 민주화운동
요약설명 : 25일 오전, 고성군 고성읍에 있는 최석림의 선거사무소 앞에서 연좌시위를 하던 학생들이 최 씨의 운동원 김도현·안만두를 선거사무소로 끌고 와 가두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학생들은 두 사람에게 최 씨와 운동원들의 소재를 묻고 수색전을 전개하는 동시에 읍내에 세워진 최 씨의 입간판과 벽보 등을 철거하였다. 이날 함안지역에서는 입후보자 조경규 지지파와 반대파 학생들이 대치하는 일이 있었고, 밤 8시 30분경에는 마산 3.15혁명동지회 학생 80여명이 가야면 말산리에 위치한 조경규의 선거사무소 유리창·옆집 유리·전화기·가재도구 등을 부수었다.『동아일보』 1960. 7. 26 석3면 ; 7. 27 조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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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비교연구회 발족
일자 : 1963.10.7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3·24 시위를 주도한 김중태, 현승일, 김도현 등 핵심 멤버들은 이미 1962년 6월 한미행정협정체결촉구시위 당시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이들은 공개 운동조직 대신 세미나, 연구발표회, 연구지 발간 등의 활동을 하는 학술단체로서의 성격을 표방하여, 합법적으로 학생운동의 기반을 확대하고 새 방향을 정립하고자 했다. 예컨대 이종률이 발표한 ‘아시아 아프리카 민족주의의 현실’이라는 연구발표회에서는 군부통치 아래 파시즘적 성향을 띠는 경향을 비판했고, 김경재와 현승일이 발표한 ‘민족의 개념’ 정립에 관한 세미나에서는 남북통일의 주제가 선명히 부각되는 식이었다. 민비연 학생들은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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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문리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한일 관계 강연회” 개최
일자 : 1964.3.23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23일, 서울대 문리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는 홍성유 교수, 서민호 의원, 공화당김영도 의원 등을 연사로 한 “한일 관계 강연회”를 열었다. 이들은 강연회가 끝나고 이날 밤 문리대 여학생 휴게실과 삼선교 소재 한 여관 등에 모여 24일의 시위 동원계획과 화형식에 쓸 허수아비 및 플래카드를 준비하였다. 선언문은 서울대 문리대 신문인『새세대』의 편집장으로 ‘4·19 제4선언문’을 기초한 바 있는 김도현이 중심이 되어 작성하였다.서중석, 「6·3사태~64년 봄의 한일회담 반대시위」, 『신동아』, 1985년 6월호, 2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