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5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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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전환과 새로운 대안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
등록번호 : 00194974
날짜 : 1991.04.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대안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 가.생명회복운동으로서의 한살림(최혜성 한살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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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과 대안 2호 편집 확정안[수신:각 지역 동모임,단체,발신:서울빈민지역운동연대회의]
등록번호 : 00043741
날짜 : 1992.08.1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도시연구소
요약설명 : 운동연대회의가 펴낸 모색과 대안 2호 편집 확정안. '지역운동에서의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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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과 대안 2호 편집 기획안[수신:각 지역동모임,참관단체,발신:서울빈민지역운동연대회의]
등록번호 : 00044630
날짜 : 1992.04.2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도시연구소
요약설명 : '재개발운동에서의 대응 방안', '지역활동가 설문조사 결과 분석' 등이 수록될 모색과...
사진사료 2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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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들의 편에 서서 - 조지 오글 목사
요약설명 : 돌며 한국의 인권 실태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나갔다. 후일 정권이 바뀌고 그는 한국에 올 수 있었다. 1989년에 책 <기적의 가운데>(The Center for Miracle)를 내려고 한국에 온 그가 한국이 국제화된 이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강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다시 독재국가가 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며 적어도 재벌에 맞선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노동조합이 알아야 한다고 했던 말은 지금도 여전히 의미있게 들린다. 글 어수갑 독일 유학 시절 동포운동단체인 재유럽민족민주운동협의회 총무부장과 한/독판 월간 <민주조국>/ 편집인 거쳐 귀국 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 등 역임. 저서로는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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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들의 희망공동체 - 한국여성노동자회
요약설명 : 8일 제2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의 여성운동상’으로 맥스테크사 노동조합을 선정하여 시상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여노회의 조직대상을 공단 중심의 제조업 노동자층으로만 설정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IMF 상황에서 여성 우선 해고, 비정규직의 확산 등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여성노동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 장기간의 토론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99년 8월 29일 여성의 노동권과 단결권 확대를 목적으로 전국여성노동조합이 출범한 것은 가히 획기적인 성과였다. 또한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있는 실직 빈곤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그들의 노동을 전문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대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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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역사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요약설명 : 중단하다시피하며 민주화운동에 전념했다. 1987년 6월항쟁의 흐름속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가 결성되자 부산 국본의 상임위원장을 맡아 부산 민주화운동의 야전사령관이 되어 거리에 나왔다. 이즈음의 그는 인권변호사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뛰는 운동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노동자대투쟁이 한창이던 1987년 8월, 노무현은 거제 대우조선 파업현장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노동자 이석규의 사체부검과 임금협상을 거들어 주다 노동법의 대표적 악소조항인 `3자개입' 금지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1988년 4월에는 13대 국회의원 총선과 관련한 문서와 사진사료가 몇 건 존재하는데, 그때를 전후로 정치인 노...
구술 컬렉션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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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돈
면담자 : 유영훈
일자/장소: 2003.7.4./한국가톨릭농민회 사무실
요약설명 : 전국농민운동연합 결성, 전민련 노농학연대, 전농 창립과 1기, 대안운동(우리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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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재
면담자 : 김봉국, 이연숙
일자/장소: 2017.7.31./광양 구술자 자택
요약설명 : 시민운동들이 활성화, 1990년대 후반 시민운동의 세대교체를 위해 ‘참여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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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동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신동호)
일자/장소: 2010년 8월 30일/서울 구술자의 자택
요약설명 : 대안반대운동 때는 심산의 지시로 교내 좌익조직에 들어가 프락치 노릇도 했다....
일지사료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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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 방송사 주최 ‘한일문제토론’ 좌담회 참가
일자 : 1964.4.1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1964.4.16 석3면. 한일회담을 둘러싼 박정희 정권과 학생층을 중심으로 한 반대운동세력의 대치점은 매판세력과 결탁해서 외세 의존적인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예속적인 근대화냐, 아니면 4·19의 민족·민주주의 이념을 계승한 자립적인 근대화냐는 것에 있었다. 즉 당시의 쟁점은 한국과 일본의 수교문제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크게 볼 때 한국전쟁 후 한국사회의 전반적 발전방향을 둘러싼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학생들은 그들의 문제의식에 대처할 만한 총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특히 대중들을 설득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었다. 반대운동과정에서 대중의 참여도가 높지 않았던 것에 이러한 측면도 작용했던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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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태 등 공소장 내용 발표 정부전복기도내란죄를 적용
일자 : 1964.6.17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적용되었다. 결국 이들은 구속 140여 일 만인 1964년 10월 28일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가벼운 형을 받고 석방되었다. 그런데 1차 민비연 사건은 민비연의 조직 사건이 아니라 6·3항쟁 이후 다수의 투쟁 주도 학생들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민비연 학생들이 포함된 것이었다. ‘2차 민비연 사건’과 완전히 조작된 ‘3차 민비연 사건’은 민비연이 조직 차원에서 다루어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화운동사 1』, 돌베개, 2008, 417·424·468쪽.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선인, 2006, 129쪽. 제2차민비연사건과 제3차민비연사건의 상세는 〈일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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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대안 채택 안 되면 범국민운동”
일자 : 1965.2.1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15일, 민정당은 당무회의와 도 지부장회의를 각각 소집하고 오는 22일에 열리는 전당대회와 한일회담에 대한 당론을 조정했다. 이들은 한일회담의 진전을 주시하여 민정당의 대안이 묵살될 경우 지방유세 등 굴욕외교반대투쟁을 전국적으로 벌인다는 방침에 합의했다.『경향신문』 1965.2.15 석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