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4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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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을 기억하는 민주시민 여러분께-부정,부패 민주압살정권의 타토의 의지를 모아 동국대학교 ...
등록번호 : 00389553
날짜 : 1991.08.1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역사문제연구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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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복교대책위원회 해체 보도의 진상보고
등록번호 : 00846696
날짜 : 1984.02.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조작된 일방적인 정보만을 보도한 관제 언론들의 반민주적 행위에 대해 엄중 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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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사용 불허 통보[수신: 전국농민회총연맹, 발신: 동국대학교]
등록번호 : 00821600
날짜 : 1993.02.1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전국농민회총연맹
요약설명 :
사진사료 3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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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사 경찰난입 및 불교탄압 범불교도 규탄대회에 참석한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학생들
등록번호 : 00957211
날짜 : 1987.05.31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학생들이 개운사에서 열린 '원각사 경찰난입 및 불교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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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해방선봉대 발대식이 열리는 동국대학교
등록번호 : 00705815
날짜 : 1991.06.0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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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중강당에서 개최된 91 불교통일문화공연 전경
등록번호 : 00706096
날짜 : 1991.08.25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사료 콘텐츠 1건
더 보기구술 컬렉션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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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일
면담자 : 오제연
일자/장소: 2012.10.5./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동국대학교 입학과 대학 분위기, 군사정권에 대한 대학생들의 입장, 동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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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구
면담자 : 유시춘
일자/장소: 2003.07.05. / 국가인권위원회
요약설명 : 탈락 후 동국대학교 발령 -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구성,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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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봉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이주실)
일자/장소: 2010년 7월 21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투쟁위원회 동국대학교 대표로 동국대생들의 4‧19 시위를 주도하였다. 구술자는 고향...
일지사료 2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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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동국대학교 학생들 선두로 경무대 향해 전진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편, 133-153쪽. 동국대학교 학생대표 11명은 4월 5일과 10일 모여 반정부 시위운동을 하기로 결의하고, 전교생이 참석하는 총장의 문화사 강의일인 4월 18일을 거사일로 정했으나 일정의 변경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다(동국대학교 학생자치위원회, 146-147쪽). 이들은 이미 이곳에 학생들이 많이 몰려있는 것을 보고 계속 전진, 세종로 거리를 북상하였다. 이들이 5대의 소방차와 무장경관의 제지를 무릅쓰고 중앙청중앙청은 현 광화문 자리에 위치했던 건물이다. 일제가 식민통치의 위엄을 내세우기 위해 1916년부터 건립을 시작해 1926년 완공한 조선총독부 청사로 해방 이후에도 정부청사로 사용했다. 이를 위해 일제는 광화문을 소격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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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학생들, 대법원장 면담 요구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자 12시 10분 경, 동국대학교와 건국대학교 학생 500-600여 명도 대법원 옆 건물인 서울지방법원의 4개 처 문으로 몰려들어 법원구내까지 쇄도하였다.『조선일보』1960. 4. 19 석3면 ;『동아일보』1960. 4. 20 조3면. 일부 기록에는 “건국대 학생들을 비롯한 약 2천 명의 학생들”이 법원으로 몰려갔다고 기술하였다(현역일선기자동인편, 95-96쪽).한 바퀴 돌고나서 청사 정면에 집결하였다. 시위대는 “법원은 행정부에 아부하지 말라!”, “3·15선거는 무효다. 공명선거 다시 하라!”, “대한민국의 살 길은 대법원에 달려있다!”, “선거소송을 빨리 처리하라!”, “대법원은 바른 판결을 내리라!”, “대법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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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 앞 바리케이드 뚫자 무장경관 발포, 사상자만 수 십 명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숨어있던시위대원들을 개 끌듯 끌고나오면서 마구 구타하였다.경무대 앞 상황에 대해서는 동국대학교 학생자치위원회의 기록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동국대학교 학생자치위원회, 149-153쪽). ‘피의 화요일’은 이렇게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오후 2시 경, 옥인동과 통의동 일대의 병원들은 총상을입은 중상자로 가득 찼다.경무대 앞에서 하복부에 총상을 입은 서울대 수학과 3학년 김치호는 위독한 상태로 수도육군병원에 후송되었으나 “제발 저 어린 동생들부터 살려달라”고 하고 자신은 숨을 거두었다. 일부 기록에는 김치호가 숨을 거둔 시각을 20일 새벽 6시로 기록하고 있다(조화영 편, 115쪽). 그러나 조선일보는 19일 밤 10시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