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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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民投票 反對聲明書
등록번호 : 00518336
날짜 : 1975.01.2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재현
요약설명 : 실시를 중지하고 10.17 헌정쿠데타 이전의 민주헌정으로 복귀하고 박정희는 하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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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LETTER TO PRESIDENT PARK CHUNG-HEE(The 2nd De...
등록번호 : 00911418
날짜 : 1977.03.0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Jones, Linda Huffman
요약설명 : -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를 비판, 하야를 촉구하는 재야인사들의 공개 서한 영문본...
사진사료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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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의 선거부정
요약설명 : 등지에서의 대규모 유혈시위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졌다.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는 결국 이승만∙자유당 정권의 붕괴를 초래한 것이다. 2. 박정희 정권의 부정선거와 선거부정 박정희 시대에도 국가권력에 의한 불법 선거개입은 계속된다. 다만 구별되는 특징이라면 방법이 좀 더 교묘해지고, 공작정치의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1963년 김종필이 조직한 중앙정보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과거 이승만시대가 관권∙행정선거였다면 박정희시대에 와서는 거기에 더해 선심공약과 금품살포에 의한 금권선거의 양상이 뚜렷해졌다는 점이다. 1967년 6∙8선거는 박정희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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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민주구국선언-유신반대운동의 불꽃
요약설명 : 어두운 면들을 없애 주소서, 아멘.” 1부 순서에서 강론을 맡은 사제단의 김승훈 신부는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면서 기도로 끝마쳤다. 2부 순서에서는 개신교의 문동환 목사가 출애굽을 주제로 한 설교를 통해 박정희의 하야를 권고했다. 뒤이어 문정현 신부가 나와 2월 16일 김지하 시인 석방을 위한 전주 기도회에 대한 경과보고를 했다. 문 신부는 김지하의 구명을 호소하는 어머니 정금성의 편지를 낭독했다. 김지하는 1974년 민청학련 주모자로 체포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또다시 체포돼 반공법 제4조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
구술 컬렉션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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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면담자 : 오제연
일자/장소: 2012.9.28./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박정희 하야 요구, 1964년 6.4데모, 1965년 3.31데모, 8.23월남파병반대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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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영
면담자 : 오제연
일자/장소: 2012.9.18./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대한 고대생들의 엇갈린 반응, 6.2 한일회담 반대시위 당시 박정희 하야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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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면담자 : 민족문제연구소(이준식, 조세열, 강동민)
일자/장소: 2010년 7월 20일, 9월 27일/구술자의 사무실
요약설명 : 말에 "그럼 하야하지"라고 답했다. 이렇게 해서 하야 성명발표가 나온 것이다. 육군공...
일지사료 1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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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청구권 1억 3천만 불 미리 받았다” 김준연의원 국회본회의에서 폭로하며 박 대통령 하...
일자 : 1964.3.2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국회·사법부
요약설명 : 국회본회의에서 “일본으로부터 1억 3천만 불의 청구권을 이미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정통한 정보소식통으로부터 지난 20일 이와 같은 말을 들었다고 전하면서, 작년 1월 최고회의 재경위원장 김동하 씨의 발언을 상기시켰다. 김 의원은 1억 3천만 불의 청구권을 받았는지의 여부에 대해 정부는 철저히 조사해야 하며, “이거야말로 한일회담과 중대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4일 “청구권을 받아 쓴 일이 없다”고 말한 최두선총리의 발언을 반박하는 가운데 이같이 말했다. 김 의원은 박정희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면서 “한일회담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동아일보』 1964.3.26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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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정국불안은 일부 정치인·언론·학생의 선동 때문” 야당은 격렬한 반발
일자 : 1964.5.23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박정희대통령은 호남지방 시찰 중, 학생데모의 악화, 무장군인들의 법원 난입 등으로 정국이 극도로 긴장되고 있는데, 이를 안정시키기 위한 정치적 결단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이러한 정국 불안은 근본적으로 일부 정치인들의 무궤도한 언동, 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선동, 일부학생들의 불법적 행동과 정부의 지나친 관용에서 연유되었다고 하며, 앞으로 정부는 보다 강력히 이러한 불법적 요소를 다스림으로써 정국을 안정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마찬가지로 학생데모가 재발할 경우, 법대로 다스리겠다고 하였다. 또한 무장군인들의 법원 난입사건을 어떻게 조처할 것이고, 앞으로의 방지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법대로 처리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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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생, “박정권 하야”를 외치며 데모
일자 : 1964.5.27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애국충정이 남았거든 하야로 보답하라”, “권고, 권고, 하야권고”, “광주발언 취소하고 네 책임 네가 져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이들은 뒤늦게 온 200여 명 학생의 증원을 얻어 다시 경찰과 충돌, 투석전을 벌였으며, 경찰은 10여 명을 연행했다. 연행된 학생의 즉각 석방을 요구, 도청 앞에서 연좌하던 데모학생들은 12시 30분쯤 연행되었던 학생 전원이 석방되자 퇴진하기 시작했다. 이날 10여 명의 학생들이 부상당했다.『경향신문』 1964.5.27 석3면, 『동아일보』 1964.5.27 석7면, 『전남매일신문』 1964.5.28 4면. 이날 전남대 시위에서는 시위 구호로서 ‘박정권 하야’가 최초로 등장했다. 야당권에서의 박정희 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