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5건
더 보기-
구속통지[문익환목사를 대통령긴급조치 위반으로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 구속함을 통지]
등록번호 : 00830876
날짜 : 1978.10.2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대통령긴급조치 위반으로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 구속하였음을 통지하는 문서.
-
서대문경찰서와 학교당국에 보내는 공개서한 - 신문방송학과 학생회장 허경주 양에 대한 불법연...
등록번호 : 00983936
날짜 : 1988.04.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연세대학교
요약설명 : 서대문경찰서는 허경주의 연행 경위를 해명하고 즉각 석방할 것, 학원 내에서...
-
자료조사 촉탁[수신:서대문경찰서장]
등록번호 : 00866936
날짜 : 1991.04.1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출판문화운동동우회
요약설명 :
사진사료 6건
더 보기-
2명의 고문경찰관이 구속 수감되는 서대문경찰서 앞을 막고 있는 전경들
등록번호 : 00731438
날짜 : 1987.01.1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19일밤 서대문경찰서로 호송했다. 2명의 고문 경찰관이 구속수감되는 서대문경찰서 ...
-
이한열 사건으로 검찰조사를 받고 나오는 김수길 전 서대문 경찰서장
등록번호 : 00715967
날짜 : 1987.07.1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
연행학우 석방을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는 연세대학교 학생들
등록번호 : 00711614
날짜 : 1987.05.1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서대문 경찰서는 13일 서울형사지법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오전 5시쯤...
사료 콘텐츠 4건
더 보기-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_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
요약설명 : 이유로 학교에서 쫓아냈고, 경찰서에 잡아넣기도 했다. 함석헌이 본격적으로 감옥살이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42년 무렵 이른바 《성서조선》 사건이었다. 친구인 김두혁과 함께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성서조선》을 통해 민족운동을 벌이면서 조선총독부 정책에 항거하자, 일제 경찰은 이들을 감옥에 가두고 《성서조선》을 폐간시켰던 사건이었다. 함석헌은 그때 일 년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해방이 되자 함석헌은 어머니와 형제를 두고 단신으로 월남했다. 아버지가 한의사이자 지주라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쪽 역시 이승만 독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고, 일제...
-
대한민국 최초의 혁신 정치인 조봉암과 진보당
요약설명 : 대한민국 경찰서장이 그 악명 높은 조항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앵무새처럼 읊어대자 유족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서장의 지시로 빈소로 향하는 길목마다 정복과 사복 경찰들이 촘촘하게 배치되었다. 그들은 조문객들의 출입을 물 샐 틈 없이 막아 버렸다. 불과 8개월여 뒤에 무너질 운명인 자유당 독재정권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공산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이승만의 최대 정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형을 당한 조봉암 사건은 대한민국 최초의 ‘사법살인’으로 기록되었다.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야만적인 법살(法殺)에 의해 조봉암과 진보당은 한국 정치사에서 강제로 파묻히고 말았다. 일제하 독립운동가에서 걸출한...
-
길 위에 선 어머니들
요약설명 : 경찰서로 학교로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4월 3일, 긴급조치 4호가 선포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주요 대학들이 모여 유신과 폭압적인 긴급조치에 저항하기 위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이름으로 민중민족민주선언 성명서를 낸 것을 빌미로 정부를 전복하고 폭력혁명을 일으킬 목적이 있다는 죄를 날조하여 학계 종교계의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였다. 한림은 윤이가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도 열흘이 지나서야 서대문 교도소에서 윤이를 만날 수 있었다. 면회실에서 사색이 다 된 어머니를 본 윤은 밝게 웃어보였다. “엄마, 나 괜찮아요. 여학생이라고 고문도 안하고 많이 봐줬어요.” 민청학련 관련자 1천여 명...
구술 컬렉션 5건
더 보기-
김규복
면담자 : 이경은
일자/장소: 2008. 10. 30./대전시 구술자의 교회
요약설명 : 관련 서대문경찰서에서 극심한 고문을 받음, 1974년의 박대선 총장 사퇴운동, 연세대...
-
이혜란
면담자 : 왕인순
일자/장소: 2013. 3. 16./서울시 양천구 자택
요약설명 : 서대문경찰서에서의 경험,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 극단 미얄 공연, 여성문화예술기획...
-
오영숙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백찬홍)
일자/장소: 2010년 10월 22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인근 서대문경찰서로 연행되었으며 구술자는 저녁때까지 시위 현장에 있었다고 증언...
일지사료 76건
더 보기-
반독재민주수호연맹 장택상·박기출, 등록 실패로 자유당에 투쟁 선언
일자 : 1960.2.13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선거법에 의거해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조선일보』1960. 2. 14 조1면, 석1면 ;『동아일보』1960. 2. 14 조1면, 석1·3면 한편 무소속으로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던 한기도(51, 의사)도 13일 밤 9시, 중앙선거위원회에 서류를 접수했으나 후보로 등록되지 못하였다. 한기도 또한 그동안 구청과 괴한에 의해 입후보 등록을 방해받았다고 폭로하며 9개 구청 모두 행정적 절차에협조해 주지 않았고, 자신의 사무원이 행방불명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후보 등록 서류를 서대문경찰서 경찰관이 탈취하였으므로 선거가 끝나면 법에 따라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조선일보』1960. 2. 14 석1면 ;『동아일보』1960....
-
신문기자 구타 사건, 언론인들 항의 이어져
일자 : 1960.2.14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폭행당한 사건의 여파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14일 ‘한국신문편집인협회’는 ‘한국 민주주의에 씻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오점’이라고 지적하고 괴한의 배후를 밝히고 치안 책임자를 징계 조치하라고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앞서 오전에는 내무부를 방문하여 항의서를 제출하였다. ‘서울외신기자구락부’에서도 이날 회의를 열고 15일에 전성천공보실장에게 정식 항의문을 전달하기로 하였다. 사건이 커지자 서울시경은 서대문경찰서와 영등포경찰서에 14일 밤 12시까지 서대 문구청과 영등포구청서류피탈 및 신문기자 구타 사건의 가해자를 검거하라고 지시하였다.『조선일보』1960. 2. 15 조1면 ;『동아일보』1960....
-
귀교하는 시위대에 깡패 습격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오후 5시경 반공회관에 임화수를 비롯하여 유지광·최창수(서대문파) 등은 신도환 의원과 깡패두목 홍영철과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신도환은 고대시위대에 폭력을 가하라는 지령을 내렸고, 임화수와 유지광에게 이 지령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홍은 3천 명의 학생을 처치할 수 없다고 곽영빈(광화문파)과 더불어 도중에서 퇴장하여 버렸다. 곧 임화수는 박호로 하여금 20만 환을 깡패들에게 5천 환씩 나누어 주도록 하였는데, 폭력배들은 액수가 적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그래서 주력행동파 6-7명에게만 2만 환씩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이들은 모의 도중인 5시 반에 서대문파와 화랑동지회의 깡패 약 100명을 경기도청 앞에 집합시켰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