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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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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장현자
면담자
이영재, 정호기
구술일자
2018. 6. 22
구술장소
세종시 소재 자택
구술시간
225분

구술컬렉션 > 노동운동 > 70년대 민주노조와 정화조치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69.  9. 1 부평 반도상사 입사.(미싱사 개발실)

1974.  3. 8. 중앙정보부 연행 

1974. 4. 15. 반도상사 노동조합 결성(1977. 노조 지부장 당선) 

1979. 3. 22.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연행 

1980. 7. 임금인상 투쟁 관련 부평경찰서 연행(10일간 구금)

1980. 8. 임금인상 투쟁 관련 합수부 연행(1980. 9. 8. 44일만에 석방)

1980. 10. 16 정화조치에 의한 조합원 자격 상실

1980. 11. 30 계엄하 조합원 교육을 이유로 부평경찰서 연행(8일간 구금)

1980. 12. 8 계엄하 조합원 교육을 이유로 합수부 연행(1980. 12. 22. 석방) 

1981. 이후 성남 소비자협동조합운동, 빈민운동


구술내용 요약

장현자는 1951년 경상북도 상주군에서 출생했고, 1967년 상경했다. 1969년 9월 반도종합상사에 입사하여 개발실에서 근무했다. 반도종합상사는 가발을 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 가발산업이 호황을 이루면서 노동자의 수가 증가했고, 주야간 교대 작업 드응로 근무환경이 악화되었다. 현장 노동자와 관리직의 차별 대우도 표면화되었고, 검신과 화재사건 등으로 회사와 노동자의 갈등이 깊어졌다.

1973년 후반 경, 한순임의 주도로 노동조합 결성이 준비되었다. 한순임은 산업선교회와 연계되어 있었다. 1974년 2월 26일 노동조합 결성을 위해 ‘호소문’을 준비하고, 현장에서는 농성이 시작되었다. 구술자 일행은 언론사들에 ‘호소문’을 들고 찾아갔으나, 냉대를 당했고, 노동청에서도 야단을 맞았다. 근로감독관과 회사로 돌아와서 합의서를 작성한 후 농성을 해산했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왜곡된 보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틀 후 중앙정보부가 주동자들을 연행하여 산업선교회와의 연계성에 대해 집중 조사했다.

1974년 4월 15일 전국섬유노동조합 교선부장 표응삼의 도움으로 어렵게 노동조합을 결성했는데, 노동청은 설립인가증 발급을 지연했다. 노동조합이 결성되자, 회사는 사무실을 제공했으나, 어용화를 위한 공작을 계속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탄압했다. 노동조합은 여러 프로그램들과 교육으로 조합원을 결집시켰다. 그러던 가운데 제1대 지부장 한순임이 회사 측과 타협한 사실과 외부에서 산업선교회를 비방하는 활동을 한 것이 드러났다. 조합원들은 구술자를 제2대 지부장으로 선출했다. 구술자는 크리스찬 아카데미 교육을 적용해 조합원을 교육시켰고, 간부들을 교육에 보냈다. 유신 말기와 신군부 집권기, 구술자 일행은 긴박한 정세를 제대로 인지하고 못하고, 노동운동을 전개했다.

1980년 5월 노동계의 정화조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화조치가 가시화된 것은 10월경이었다. 경찰의 수배를 받던 구술자는 부지부장 김분겸의 집에 갔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 구술자는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조사를 받았고,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구술자는 11월 30일 다른 간부들과 함께 보안사 서빙고실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구술자에게 적용된 죄목은 계엄포고령과 반공법 위반이었다. 약 보름 동안의 조사를 받고, 구술자는 석방되었다. 회사는 1981년 1월 6일 휴업에 들어갔다. 구술자는 석방 직후인 1981년 2월 22일 결혼했다. 조합원들에게는 사직서가 강제되었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타 지역으로 발령했다. 결국 노동조합은 3월 13일 해산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노동계 정화조치가 내려지기 직전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