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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정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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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정인숙
면담자
이영재, 정호기, 이소영
구술일자
2019. 7.9(1차), 7.23(2차)
구술장소
4.9통일평화재단
구술시간
258분

구술컬렉션 > 노동운동 > 70년대 민주노조와 정화조치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49. 충북 음성군 출생 

1962. 중학교 졸업 후 상경

1967. 돈암동 성당에서 가톨릭노동청년회 가입 

1971. 5. 청계노동조합 부녀부장 

1975. 가톨릭노동청년회 전국 여성회장

1975. 오스트리아 린쯔회의 참가 

1978. 부산으로 내려가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국제상사 입사 

1978. 5. 전 섬유노조 김영태 위원장 통대 출마 비판 유인물 사건 구속 

1981.-1986. 성남에서 노동운동 전개 

1987.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결성, 전태일 기념사업회 

2002. 광주가정폭력, 성폭력 상담소, 참여성노동복지터

구술내용 요약

정인숙은 1949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으로 예산군 단양리로 피난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다. 양가는 모두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다. 아버지는 신학교를 건강상 중퇴했는데, 생활력이 부족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빈곤함을 면치 못했고, 상급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1962년에 작은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을 돕기 위해 상경했고, 돈암동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1967년 돈암동성당에 가톨릭노동청년회가 결성되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했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사건에 충격을 받았다. 1971년 윤순녀의 소개로 청계노조 부녀부장을 맡게 되었다. 구술자는 소모임을 결성하여 조합원 확장을 도모했다. 첫 소모임은 아카시아회였는데, 이후 다양한 소모임들이 결성되었다. 구술자는 1975년까지 청계노조에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의미가 컸던 활동은 1973년 새마을 노동교실의 개관이었다. 구술자는 1972년 전국모범여성근로자들을 청와대에 초청하는 자리에서 교육공간 마련을 요청했는데, 그 결실이 새마을 노동교실이었다. 그런데 노동교실 개관식에 함석헌 선생을 초청한 것이 문제가 되어 청계노조는 큰 홍역을 치렀다.

1975년 가톨릭노동청년회 전국 여성회장에 선임되었고, 같은 해 3월 린쯔회의에 참석했다. 약 한 달 동안의 린쯔회의 참석 경험은 구술자에게 여러 모로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린쯔회의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천주교계의 갈등이 있었는데, 그동안 노동운동을 지원했던 도요한 신부가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충격을 주었다. 1977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추진을 위한 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가톨릭노동청년회 전국 여성회장의 임기를 마치고, 1978년 부산으로 내려와 동양고무와 국제상사에 취업하여 민주노조 결성을 도모했다. 1978년 전국섬유노조 김영태 위원장이 부산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출마하자,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과 반대운동을 하다 구속·수감되었다. 1979년 부산에서 더 이상 활동이 불가능하자, 상경하여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원을 교육하는 등 노동운동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정화조치로 사실상 수배 상태에 놓이자, 성남 만남의 집으로 내려와 생활했다. 구술자는 성남에서 노동자 의식화 교육을 하면서 민주노조 결성을 지원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노동계 정화조치로 잡혀간 노동자를 목도한 이야기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