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5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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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개연 언론정보공개시민운동본부 발족식[수신:학술단체협의회,발신:언론개혁시민연대]
등록번호 : 00374003
날짜 : 2000.09.1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학술단체협의회
요약설명 : 초청장-언개연 언론정보공개시민운동본부 발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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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 전국 동시 개최의 건[수신:학술단체협의회,발신:언론개혁시민...
등록번호 : 00375965
날짜 : 1998.11.1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학술단체협의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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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운동 토론회 초청장[수신:학술단체협의회,발신:언론개혁시민연대]
등록번호 : 00375967
날짜 : 1998.11.2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학술단체협의회
요약설명 :
사료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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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요약설명 : 규제와 공직자 숙청, 언론통폐합과 언론계 숙청 등의 조치들이 신속하게 실행되었다.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국민을 향한 살인적인 국가폭력이었던 '삼청교육'이 실시되었다. 삼청교육대의 명칭은 교육대상자들을 검거하기 위한 군경합동작전인 삼청작전에서 비롯되었다. 1980년 8월 4일 국보위는 각종 사회악을 단시일 내에 효과적으로 정화하고 사회개혁을 이룬다는 명분으로 '사회악일소 특별조치'를 발표하고, 포고령 제13호에 의거한 삼청작전으로 1980년 8월 1일부터 1981년 1월까지 5개월간 4차에 걸쳐 60,755명을 법원의 영장 없이, 지역별 인원할당까지 동원하여 체포하였다. 폭력배를 일소한다는 명분과는 달리 검거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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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건회, 유럽 민주화운동의 시작
요약설명 : 무리들을 물리치자!”고 호소했다. 이렇게 해서 유럽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의 공개적인 반독재운동이 일어났다. 주목할 것은 박정권의 폭압정치가 한창 진행 중이던 그때 이미 그들은 박정권 붕괴 후 전두환 정권의 출현을 미리 내다보는 것 같은 ‘예언’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체제의 개혁이 없는 단순한 정권이나 인물만의 교체를 원치 않는다. 그리고 구국을 빙자하여 일어날 지도 모를 제2의 군사쿠데타를 우리는 철저히 경계한다. 그것은 항상 민주사회를 배반하며 권력탈취의 악순환을 가져올 뿐이다.” 민건회가 독일에서 조직된 배경으로는, 국내는 3선 개헌으로 유신 독재체재의 장기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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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령의 역사
요약설명 : 발생하였다. 당일 새벽 쿠데타군은 서울과 언론기관을 장악하고 ‘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하고는, 아침 9시를 기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4.19혁명으로 탄생한 장면 정권을 해체시켰다. 한일협정반대투쟁이 한창이던 1964년 6월 3일, 학생과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오후 8시를 기해 서울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는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를 진압하였다. 1965년 8월 26일에는 또 다시 위수령을 발동하여 두 번째로 군을 투입하였다. 1972년 10월 17일에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우리의 정치체제를 개혁한다”는 명목으로 국회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 중지, 헌법 일부 기능 중지, 비상국무회의 작동 등...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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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윤보선 후보, 10대 집권목표 제시
일자 : 1967.3.8
분류 : 분류없음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길을 택하느냐, 아니면 민주정치의 회복과 국정개혁의 기회를 갖느냐의 중대 기로”라고 말했다. 윤 씨는 “박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할 바에는 차라리 정권을 내놓겠다’고 말한 바 있으나 실제 오늘의 현실은 ‘부정선거를 해서라도 절대정권을 안 내놓겠다’는 길로 줄달음 쳐 공무원의 선거운동, 공화당의 불법적 당세확장, 막대한 선거자금의 부정염출, 국영방송 등의 편당적 악용, 언론기관에 대한 간섭 등 너무나 많은 부정선거의 징조가 이미 명백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파월국군문제에 언급하여 “국군파월 당시와는 국제정세가 많이 달라졌고 한미관계 등을 고려하여 주월군의 무조건 철수를 주장하지 않겠으며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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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대학원 대표 12명, 대학제도개혁 기본방향 제시
일자 : 1971.6.11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잘못에 있다”고 주장, “대학제도의 근본적인 결함을 개혁하고 학원의 자유를 구현하기 위해” 그들이 종합한 대학제도개혁 기본방향 시안을 대학본부에 제시했다. 대학원 학생들은 그들이 마련한 이 시안에서 대학자치구현의 방법으로 교수를 구성원으로 하는 민주적 회의체에 의해서 대학총장, 학장, 교수의 임면 및 징계 등 학내인사가 의결돼야 하며, 교과과정의 편성 및 학부 학과의 설치, 폐지, 통합을 비롯한 교육행정도 같은 회의체에서 의결돼야 하고, 대학의 휴교휴업 및 학생징계 등에 관한 상황도 이 회의체에 의해 의결돼야 하며, 학원사찰 및 경찰권의 학내 발동은 더 말할 것 없이 총학장의 동의를 얻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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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생연맹, 시국백서 발표하고 민권투쟁에 궐기호소
일자 : 1971.9.7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대중의 참상이 심화, 노출됨에 따라 4월혁명 이래의 민주민권 운동의 불길이 일어나고 민주적 내정개혁에의 요구가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민주수호청년협의회의 발족, 언론인들의 자유언론 선언, 법관들의 사법권 독립을 위한 항쟁, 교수들의 대학 자주 투쟁 등 각계의 일련의 민주화운동과 노동자의 상징인 전태일 사건을 계기로 하여 폭발하기 시작한 노동자들의 투쟁, 광주대단지 집단항거 사건 등 대민주민권운동이 10여 년에 걸친 정부통치의 폭압을 뚫고 더욱 철저하게 되살아나고 불타오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고 현실을 분석했다.『자유의 종』 28, 1971.9.9. 1면; 『민주전선』 1971.9.15.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