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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사업개요
-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1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4~5차년도(2021~2022) 과제인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은 1970~80년대 언론 투쟁에 투신한 언론인들을 구술 대상자로 선정하여 채록을 수행했다. 1차 채록의 주요 내용은 박정희 정권기 보도통제 실태와 동아·조선투위의 활동을 비롯하여, 전두환 정권기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결성과 <말>지 발행, ‘보도지침’ 폭로 과정 등 한국 언론 운동사의 핵심적인 사건들을 포괄한다. 이를 통해 언론인들이 독재 권력에 맞서 전개한 민주화운동의 구체적인 실천 과정을 당사자의 증언으로 실증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김주언
- 면담자
- 한승동
- 구술일자
- 2021.11.12.
- 구술장소
- 서울시 종로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 구술시간
- 129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언론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72 서울고등학교 졸업, 문리대 화학과 입학
1974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 기소유예로 석방, 12월 군 입대
1977 8월 만기 전역
1979 대학 졸업,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구류 처분
1980 4월 한국일보사 입사
1986 보도지침 복사본을 입수하여,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에 전달
12월 보도지침 사건으로 구속
1987 6월 3일 징역 8월에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1년를 선고받고 석방
10월 한국일보사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
1992-1994 32, 33대 한국기자협회장 (임기 1년 회장직을 연임)
1998 언론개혁시민연대 초대 사무총장
이후,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 SBS시청자위원, KBS 이사 등 역임
현재,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 구술내용 요약
-
1952년 충남 천안시 근처 직산에서 천안중, 서울고를 거쳐 1972년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1973년 10월 2일 유신 이후 최초의 ‘유신 철폐’ 학내 시위에 참여했으며,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 같은 해 8월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요주의 인물로 감시를 받으며 군복무를 마쳤다. 1979년 11월 ‘YWCA위장결혼식사건’으로 서울시 서빙고동 국군보안사령부 대공분실에서 조사 받으면 고초를 겪었고, 구류 29일 처분을 받았다.
1980년 4월 한국일보사에 입사하여, 견습기자 시절 서울시청에 가서 신문기사 사전검열을 받았다. 1985년 1월 온산공단 주변 주민들이 공해병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보도하였다. 훗날 ‘온산병’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는 한국환경운동사에서 기념비적인 보도였다.
한국기자협회 한국일보 분회 조직에 앞장섰고, 1986년 4월 18일 분회 총회를 열었다. 같은 해 우연히 ‘보도지침’ 보관철이 편집국 서무 책상에 있는 것을 발견하여 이를 복사했다. 이후, 이 복사본은 ‘언협’에 전달하였다. 당시 언협 공동대표 겸 사무국장 김태홍이 김정남 등과 상의하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보도지침은 <말>지 특집호에 실려 세상에 알려졌다.
1986년 12월 들어 김태홍, 신홍범이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곧 연행될 것을 예감했다. 12월 15일 출근길에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다. 1987년 6월 3일, 징역 8월에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당일 석방된다. 비교적 관대한 처벌을 받은 이유는, 보도지침 사건 자체가 처벌할 명분이 없었고 외국에서도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1987년 7월 한국일보 문화부로 복직한 다음, 그해 10월 서울 YMCA에서 ‘영등포 조기축구회’ 모임인 것처럼 위장하여 비밀리에 한국일보사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1998년 퇴사하여 ‘언론개혁시민연대’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하는 등 언론개혁운동에서 기여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보도치침>을 입수하게 된 경위. <보도지침> 폭로 이후, 자신이 주역임을 감추던 구술자가 1986년 12월 수사당국에 잡혀가 조사를 받으며 당했던 고초를 증언함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