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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사업개요
-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2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의 4~5차년도(2021~2022) 과제로 진행된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은 당시 운동에 깊이 관여한 언론인을 구술 대상자로 선정하여 채록을 수행했다. 2차 채록에서는 <말>지 발행 및 ‘보도지침’ 폭로 과정을 비롯해,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의 창립과 지난 42년간 전개된 진상규명·명예회복·보상 투쟁을 기록했다. 또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 회원들의 증언, 신문·방송·통신계의 언론 통제 실상과 해직 기자들의 민주언론운동, 호남 지역 및 여성 해직 언론인이 겪은 탄압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고승우
- 면담자
- 이병호
- 구술일자
- 2022.9.23.
- 구술장소
- 민주언론시민연합
- 구술시간
- 329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언론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고려대 농대 졸업
1975 합동통신 입사
1980 1980년 5월 언론 보도사전검열 폐지 등을 주장하다가 강제해직
대우그룹 홍보실 입사
1984 3월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창립 주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 회원, 이후 언협 활동
1987 <말>지 편집장
<한겨레신문> 창간 사무국 합류. 창간 사무에 기여
1988 창간 이후, 편집국 부국장, 논설위원 역임
<미디어오늘> 논설위원, 한성대 겸임교수 역임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 방송독립포럼 공동대표 역임
(현)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
- 구술내용 요약
-
전라북도 옥구(군산)에서 태어나 청소년기에 농촌 계몽운동가가 되리라 희망했지만, 축산학과에 진학 후 전공보다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군복무 후 늦게 복학한 뒤, 농업을 전체 산업 속에서 다룰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언론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1975년 합동통신사에 입사하고 정권의 언론 감시, 외신 보도 통제의 실상을 알고 문제의식이 생겼다. 10·26사건 이후 민주화의 바람이 불자 유명무실한 기자협회를 개혁하고자 회사 선배인 김태홍이 기자협회장이 되도록 지원했다.
기자협회의 주도 아래 검열 철폐를 주장하다가 비상계엄령의 확대로 자유언론 운동이 중단되었다. 이후, 국시부정이라 이유로 8월 4일 강제해직 당했다. 취업이 제한되자 대학원에 진학하여 언론사회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어렵게 대우그룹에 입사하여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와 언협 활동에 참여했다.
6월항쟁 이후에 퇴사하여 <말>지 편집장을 맡았고 12월 대선을 앞두고 공정보도를 위해 노력했다. 한겨레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하였다. 사회부장 시절인 1990년 9월 보안사 민간인 사찰 실태를 폭로하여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여론매체부장으로서 본격적인 미디어 비평 시도했다. 나아가 언론계의 자정과 언론인의 윤리 강조하여 언론의 민주화에 기여했다.
한겨레 퇴사 이후, <한겨레신문의 창간 과정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라는 박사 학위 논문을 저술하였다. 민언련 이사장 시기에는 민언련 후원회원 증대와 시민운동의 변화에도 기여했다. 조용수와 민족일보 사건, 국가보안법, 한미상호방위조약,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80년 언론인 해직 사태의 진상규명, 명예회복, 피해자 보상을 위하여 오랜 세월 앞장섰다. 2021년 광주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보상이 가능하게 됐지만 입법상 오류가 발생하여 이를 개정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언론 검열이 철폐되지 않자 기자협회의 결의에 따라 언론사들이 합심하여 제작 거부에 들어가는 과정과 해직언론인들의 단결을 막기 위해 해직 사유를 다르게 적용한 신군부의 계략을 증언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