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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정
사업개요
-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2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의 4~5차년도(2021~2022) 과제로 진행된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은 당시 운동에 깊이 관여한 언론인을 구술 대상자로 선정하여 채록을 수행했다. 2차 채록에서는 <말>지 발행 및 ‘보도지침’ 폭로 과정을 비롯해,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의 창립과 지난 42년간 전개된 진상규명·명예회복·보상 투쟁을 기록했다. 또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 회원들의 증언, 신문·방송·통신계의 언론 통제 실상과 해직 기자들의 민주언론운동, 호남 지역 및 여성 해직 언론인이 겪은 탄압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박우정
- 면담자
- 한승동, 박성득, 이병호
- 구술일자
- 2022.9.3.
- 구술장소
- 구술자 자택
- 구술시간
- 434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언론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69 충남 홍성군 광천상업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독문학과 입학
1972 군 입대
1975 4월 복학, 12월 문화방송경향신문주식회사 입사
1980 경향신문 제작 거부 사건으로 구속, 강제 해직
현대건설 조사과장
1988 1월 한겨레신문 민족국제부 편집위원보 / 1989년 7월 민족경제부 편집위원
1993년 5월 경제부 편집위원 / 1995년 3월 출판국장 / 1997년 3월 제11대 편집위원장 /논설주간
1998 5월 2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는 박우정, 서동구, 이경일, 표완수, 박성득, 고영재, 홍수원에 대한 재심 청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함.
2010년 3월 ~ 2014년 민언련 이사장
도서출판 길 대표
- 구술내용 요약
-
1950년 충남 홍성의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생 시절 문학청년이었지만 작품 창작보다는 비평에 더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1975년 경향신문사에 입사한 다음 신문사의 친정부적인 태도에 실망하고 정신적 방황을 하게 된다. 이 시기 사회과학 서적과 외신을 접하여 국내 현실과 국제 정세에 대하여 눈을 뜨며 지식인으로 지적 성장을 하였다.
77년 12월 본인이 작성한 기사가 불순하다는 혐의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으면서 억압적인 국가권력을 실감한다. 79년 6월 정권을 찬양하는 왜곡기사가 나가자 소장파 기자들과 함께 성명서를 발표하고 편집국 간부에게 항의했다. 이 사건은 유신시대 최초의 자유언론운동이라고 평가받는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 직무 정지와 관련하여 정권을 대변하는 보도 행태에 항의하다 편집국 외로 축출되기도 했다.
1980년 5월 계엄당국에 항의하여 보도 검열과 신문 제작의 거부를 주동했다. 6월 8일 남영동으로 연행되어 가혹행위를 당하며 거짓 진술을 하게 된다. 결국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선고받았다. 옥중에서 사표를 쓰지 않고 버티다 강제 해직당한다.
석방 후, 현대그룹에 입사했고 언협 창립과 운영에 동참한다. <말>지 편집장을 맡아 객관적이고 사실에 충실한 매체를 발행했다. 1986년 보도지침이 입수되자 홍수원과 <말>지 특집호 보도지침을 제작한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제 실상과 함께 권력과 언론의 유착을 폭로하여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고, 정권의 반민주적이고 폭압적인 면모를 고발했다. 보도지침 폭로는 1980년 언론운동의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6월항쟁 이후 <한겨레신문> 창간에 동참했고, 제11대 편집위원장과 논설주간을 역임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언론인들의 순수한 자유언론운동이 신군부에 의해 반공법 위반 범죄로 조작되는 과정과 수사 과정의 고문 및 가혹행위를 증언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