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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강
사업개요
-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2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의 4~5차년도(2021~2022) 과제로 진행된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은 당시 운동에 깊이 관여한 언론인을 구술 대상자로 선정하여 채록을 수행했다. 2차 채록에서는 <말>지 발행 및 ‘보도지침’ 폭로 과정을 비롯해,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의 창립과 지난 42년간 전개된 진상규명·명예회복·보상 투쟁을 기록했다. 또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 회원들의 증언, 신문·방송·통신계의 언론 통제 실상과 해직 기자들의 민주언론운동, 호남 지역 및 여성 해직 언론인이 겪은 탄압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박화강
- 면담자
- 이병호, 박성득
- 구술일자
- 2022.10.11.
- 구술장소
- 구술자 자택
- 구술시간
- 157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언론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 1946 전라남도 보성군 출생1965 조선대 경영학과 입학1972 전남매일신문 입사. 사회부 기자1980 전남매일신문 ‘5‧13자유언론실천선언’ 주도, 보도검열 거부 주도, 집단 사표 제출 운동 주도, 8월 강제 해직1984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전남 지역 회원으로 활동1987 한겨레신문 창간위원, 한겨레신문사 입사1988 한겨레신문사 광주-호남 주재 기자2004 한겨레신문사 퇴사2006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2007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2011 전남 보성군 득량면에 인문학학당 ‘불이학당’ 개소2013 광주환경공단 이사장
- 구술내용 요약
-
박화강은 전라남도 보성군에 태어났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부친은 언제나 덕이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했다. 시골 공무원의 횡포에 당하는 아버지를 보고 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던 그는 친구의 권유에 따라 전남매일신문 입사한다.
재야인사의 동정을 보도하지 말라고 간섭하는 편집국장, 회사에 피해가 되는 기사를 금지하는 선배들을 보며 기자란 직업에 회의를 느꼈다. 정보기관원이 신문사를 수시로 출입하며 보도를 통제했고, 지역 언론인도 침묵만 지켰다.
1980년 소장파 기자들과 함께 ‘5‧13자유언론실천선언’을 주도했다. 이때 직접 작성한 선언문은 지난 시절 기자의 책무를 저버린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반성문이었다. 광주항쟁의 진상 보도가 좌절되자 지하신문 발행을 생각하기도 했으나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진실보도가 광주시민을 흥분시켜서 더 많은 희생을 초대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철회했다. 5월 20일 진실보도가 회사 측에 의해 좌절되자 이에 항의 하여 기쟈 26명이 함께 공동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란 문구를 사직서에 넣어서 광주항쟁의 진실을 한 줄이라도 기록하고자 했다. 이 사직서는 3만부 인쇄되어 광주시민에게 배포되었다.
8월 7일 강제해직을 당한 후, 개인 사업을 했다.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했고 광주·전남 지역 주주 모집에 기여했다. <한겨레신문> 광주 주재 기자로서 광주 송하동 양민학살 사건을 보도하는 등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앞장섰다. 들불야학을 운영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요절한 여동생 박기순은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훗날 광주항쟁 중 전남도청에서 희생한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 결혼을 허락했다. 언론 통제와 순치는 권력의 속성이므로 언론인은 언론자유 수호를 위해 싸워야 된다고 믿는다. 언론인은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하고, 언론의 사명은 진실 보도이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기자의 책무를 저버렸다는 자괴감에 빠진 기자가 자유언론 수호에 앞장서는 과정과 진실 보도가 좌절되자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집단 사직을 주도하는 과정을 증언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