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Embed 퍼가기
하단의 내용을 복사해서 퍼가세요.
URL 퍼가기
하단의 내용을 복사해서 퍼가세요.
이메일 공유
박성득
사업개요
-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1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4~5차년도(2021~2022) 과제인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은 1970~80년대 언론 투쟁에 투신한 언론인들을 구술 대상자로 선정하여 채록을 수행했다. 1차 채록의 주요 내용은 박정희 정권기 보도통제 실태와 동아·조선투위의 활동을 비롯하여, 전두환 정권기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결성과 <말>지 발행, ‘보도지침’ 폭로 과정 등 한국 언론 운동사의 핵심적인 사건들을 포괄한다. 이를 통해 언론인들이 독재 권력에 맞서 전개한 민주화운동의 구체적인 실천 과정을 당사자의 증언으로 실증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박성득
- 면담자
- 한승동
- 구술일자
- 2021.10.15.
- 구술장소
- 서울시 종로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 구술시간
- 154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언론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70 고려대 사회학과 입학
1976 고려대 졸업
9월 경향신문사 편집기자로 입사
1980 5월 보도통제에 맞서 신문제작 거부를 주도
6월 구속,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1년 선고
1981 2월 13일 형집행정지로 출감
1983 3월 ‘대우’ 홍보실 입사 (1986년 3월 퇴사)
1985 언협 기관지 <말>지 2호부터 제작 담당
1986 <말> 특집호 – 보도지침을 제작한 다음 1년간 도피생활
1987 한겨레신문 창간에 초기부터 동참
한겨레신문 전산제작부 부장, 경영기획실장, 이사 등을 역임한 다음 2004년 퇴사
- 구술내용 요약
-
1950년 한국전쟁 시기에 경남 함안에서 출생한 박성득은 고려대 사회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는 대학 시기 세상사에 무심한 편이었다. 졸업 후 우연히 경향신문사 편집기자 채용시험에 지원해서, 뜻하지 않게 언론계에 입문했다.
그는 소장파 선배들과 자주 어울리며 언론 상황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보도하지 못하자, 언론검열에 맞서 신문제작 거부를 주도했다. 이로 인해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석방된 다음부터 1975년 해직기자 선배 및 민주화운동 인사들과 교유하게 된다.
1984년 12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발족하자 초기 회원으로 활동했고, 언협의 기관지 <말>지 2호부터 제작을 담당했다. 당시, 지하 언론인 <말>지의 제작은 매우 어렵고 위험했다. 해직기자들은 실제 제작에는 어두웠다. 구술자는 자처해서 이 일을 맡은 다음,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비밀리에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1986년 9월 <말>지 특집호 보도지침을 발행하고 나서, 그는 도피생활을 시작하여 마포구 대흥동에서 은신하다가 6월항쟁을 맞이했다.
6월항쟁 이후 시민의 역량에 주목한 해직기자들은 새로운 제도권 신문 창간을 도모하게 된다. 구술자는 기획단계부터 여기에 동참하여, 제작 부문을 담당했다. 활자를 사용한 기존의 제작방식으로는 창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이에 CTS라는 컴퓨터조판 방식을 실험적으로 도입하게 된다.
그는 전례가 없어서 불확실하던 이 제작 시스템 구축에 성공하여 한겨레신문 창간에 힘을 보탰다. 이후 판매이사, 사업이사 등을 역임했고 2004년 퇴임했다.
구술자는 언론계 입문 이래, 겪은 일과 사람과의 인연에 감사하며, 노년에도 언론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정권 비판적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의 기관지 <말>지를 제작하기 위해 서울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어떻게 인쇄업자와 제본업자를 섭외했는지 설명. 인쇄가 성공한 이유는 비밀 유지기도 했지만 당시 정권에 대한 민중의 반감이 높아 제작자들도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함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