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7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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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치와 학교운영위원회 2000년 6월 (제 2호)
등록번호 : 00003644
날짜 : 2000.06.00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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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치와 학교운영위원회 제1호
등록번호 : 00006073
날짜 : 2000.02.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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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교육행동위원회와 연세자치행동연대에서 학벌없는 사회 노무현후보 초청토론회에 오신 여러분에...
등록번호 : 00158160
날짜 : 2002.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원...
요약설명 :
사진사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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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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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 광주 해방구에 핀 사랑의 꽃
요약설명 : 뭉클하다. 광주 시민들은 대학교수, 종교인, 청년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시민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계엄군과 협상에 나섰다. 그런데 정작 계엄군은 광주 시민의 희생에 대한 사과나 민주화에 대한 약속은 한마디도 없이, 시민군의 무장 해제와 시위 군중들의 귀가만을 종용했고 협상 중에도 탱크를 앞세운 채 광주시내 진입을 시도하였다. 이런 계엄군의 무모한 도발을 저지한 것은 3ㆍ1운동 참가자이며 제헌국회의원이기도 했던 이성학 장로 등이었다. 특히 70대 중반의 고령이었던 이 선생은 화정동 고개를 넘으려는 탱크 앞에 웃통을 벗고 맨몸으로 누워 ‘나를 밟고 지나가려면 가라’고 외침으로써 캐터필러를 멈추게 했다. 시민군들의 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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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항쟁의 증언
요약설명 : 증언을 통해 왜 사북항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광부들은 자치방범대를 조직해 질서를 유지했으며,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예비군 무기고와 지서 무기고 광산 화약고를 지켰다. 항쟁 지도부 역할을 한 이원갑, 신경을 중심으로 20여 명의 협상단이 꾸려졌다. 이들은 22일 오후 인근 삼척탄좌 사무소에서 정부 측 대책위원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지도부였던 이원갑은 사북항쟁 당시 공수부대가 진입한다는 정보를 듣고 화약고를 점거하고 비상상황에 대비했던 절박한 순간을 증언하고 있다. 4월 24일 오전에 노사정 대표가 11개항의 합의사항을 발표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이재기를 비롯한 어용노조 집행부의 사퇴,...
구술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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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렬, 김혜경
면담자 : 박종렬
일자/장소: 2003.9.2./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의실
요약설명 : 자치위원회 결성, 지역주민대표자회의의 연합회 준비과정, 화이트목사의 교육방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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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득철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3.7.23./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성동공고 진학과 학내 활동, 1964년 ‘백지동맹’ 사건 전말, 1965년 성동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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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중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박재홍)
일자/장소: 2010년 6월 29일/덕수고등학교
요약설명 : '통반장 위원회의 밤' 등 행사를 하여 학교 안까지 소음이 들려와 운동장을 월담하여...
일지사료 4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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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역적 몰아내자”구호도 힘차게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자치위원회, 129-130쪽. 한편 동아일보는 “시위 학생들이 안암동 입구를 거쳐 신설동 로터리를 지날 때까지 경찰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다(『동아일보』1960. 4. 19조3면). 학생들이 동대문을 약 10미터쯤 지나 종로5가로 구부러질 때 경찰 백차 3대가 길을 가로막고 저지하였다. 이번에는 학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달려 나가 이를 돌파하였다. 종로5가에서도 백차 3대와 수 십 명의 경찰관들이 가로막았으나 학생들은 또다시 이를 돌파하여 전진을 계속하였다. 시위 학생들이 “자유 인민들 피를 흘린다”는 군가를 부르자 연도에 들어선 시민들과 버스 속에 타고 있던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당황한 경찰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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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학생시위가 있기까지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모여 사태를 논의하며 시위 문제를 토론하였다. 그러나 별다른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학생자치위원회 운영위원장들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시위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고 한다. 학생회 간부들의 논의와 계획은 고려대학교 학생자치위원회가 쓴 「자유 정의 진리 되찾기 위해」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고려대학교학생자치위원회, 「자유 정의 진리 되찾기 위해」, 이강현 편, 『민주혁명의 발자취 : 전국각급학교 학생대표 수기』, 정음사, 1960, 123-132쪽).10일 경에는 밤사이에 캠퍼스 십여 군데에 각기 다른 필체와 문체로 학생들의 봉기를 촉구하는 벽보가 나붙었다.안동일·홍기범 공저, 『기적과 환상』, 영신문화사,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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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총장이 직접 나와 시위대 설득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되어 있다(고려대학교 학생자치위원회, 131쪽).학생들의 시위가 장기화할 우려가 있자 당황한 한상봉 고등교육국장이 전화로 유진오 총장을 불러내어 학생들을 해산시켜주도록 요청한 것이었다. 시경은 백차에 마이크를 장치하고 유 총장의 등단을 기다렸다.조화영 편, 79쪽유 총장이 경찰차에 장치된 마이크를 빌려 학생들을 향해서 연설을 시작하려 하자학생들은 “경찰 마이크 쓰지 말라”, “자유당 마이크 집어치워라”고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유 총장은 빌려온 다른 마이크를 통해 학생들에게 해산하라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경찰에 연행된 학생들을 이 자리에 데려와 보이라고 요구하면서 해산에 불응하였다.『동아일보』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