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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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 조치에 따른 문제 사례
등록번호 : 00068275
날짜 :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전명혁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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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 이후의 연속적인 노동조합 탄압조치-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의 강제폐쇄 경우
등록번호 : 00881675
날짜 : 198*.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부활과 부당조치 내린 서울 시장의 사퇴 등 5개항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농성하다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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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에 대한 우리의 입장-80년 정화.해고.삼청교육조치 책임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원...
등록번호 : 00883259
날짜 : 1989.10.0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되었고 이에따라 자연스럽게 노동운동 탄압과, 노동계 정화조치를 통해 핍박 받았던...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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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요약설명 : ‘정치·사회 정화’의 명분으로 신군부에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수많은 민주인사들에 대한 해직과 지명수배, 체포·고문·투옥이 이루어졌고, 구 정치인으로 불리는 세력에 대한 정치 활동 규제와 공직자 숙청, 언론통폐합과 언론계 숙청 등의 조치들이 신속하게 실행되었다.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국민을 향한 살인적인 국가폭력이었던 '삼청교육'이 실시되었다. 삼청교육대의 명칭은 교육대상자들을 검거하기 위한 군경합동작전인 삼청작전에서 비롯되었다. 1980년 8월 4일 국보위는 각종 사회악을 단시일 내에 효과적으로 정화하고 사회개혁을 이룬다는 명분으로 '사회악일소 특별조치'를 발표하고, 포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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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끝났다. 언론사를 장악하라! - 1980년, 언론통폐합
요약설명 : 1980년 여름이 되자, 그는 검열을 넘어 드디어 언론인 대학살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름하여 ‘언론인 자체 정화계획서’, 대량해고 명단도 바로 그 ‘정화계획서’ 속에 들어있던 것이었다. 자체 정화라는 합법적 탈을 쓰고 있었지만 폭력적인 강제해고였다. 그 계획서에 따라 1980년 7월 29일 신문협회와 방송협회는 임시총회를 열어 언론인 해직조치를 단행하였고, 8월 16일 933명이 데스크를 떠나 바람 부는 거리로 쫒겨났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들이 집권하고 있는 한 영구히 언론에 재갈을 물려둘 필요가 있었다. 바로 이 작업에 뛰어 든 또 하나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5공 내내 ‘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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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채록사업(2차년도) 완료
요약설명 : 결과 <유화국면 이전 민주화운동 주요 사건>, <70년대 민주노조와 5.17 이후 정화조치2>, <광주미문화원 방화사건>, <민주화운동 원로인사>, <강원지역 민주화운동 원로> 등 5개의 과제별 사업을 진행했고, 민주화운동 관련자 30명의 구술인터뷰와 107시간의 구술을 수집했다. <유화국면 이전 민주화운동 주요사건>은 1979년 10.26부터 1984년 유화국면에 이르는 기간에 일어난 민주화운동사건에 대한 구술로, 남민전사건, 무림사건, 학립사건, 부림사건 관련자 11명의 구술 43시간을 채록했다. 또한 <광주미문화원 방화사건>구술은 방화사건 관련자 3명의 구술 8시간을 채록했다. 구술자들은 다음과...
구술 컬렉션 2건
더 보기일지사료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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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의과대, 호소문 및 해명서 발표
일자 : 1960.5.15
분류 : 학생의 민주화운동
요약설명 : 우리들은 4.19의거 이래 학우들이 민주제단에 뿌린 선혈의 대가로써 학원의 민주정화를 기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본 대학에 있어서도 민주교육의 근본적 이념에 입각하여 민주학원의 건설을 지향하고 있는 요즘 일부 학생들의 이성을 망각한 경거망동 때문에 본교의 제반기능은 완전 공백사태를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등의 수습대책도 없이 다시금 일부 학생들이 맹휴에 돌입하여 가일층 학원의 마비상태를 조장시키고 있음은 심히 통한하는 바이다 애교심에 불타는 학우동지여러분! 혹시라도 편파적이고 근거 없는 선동에 현혹되지 말고 냉정한 이성으로 돌아가 배◯학원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여야 함은 금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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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문과·이공·정법대학 학생회, 성명서 발표
일자 : 1960.11.3
분류 : 학생의 민주화운동
요약설명 : 장래의 존망의 위기를 마련하는 것이니 우리 연세인은 목전의 부패부터 제거함이 사회정화의 접경이라 믿어 적극적인 운동과 투쟁을 비장히 맹서하는 바이다 학생은 어떤 행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요 간섭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지만 부당한 처사 등을 직시하고도 젊은 혈기에 묵과할 수도 없는지라 연세인은 이사진의 횡포와 독재로 너무 장기적으로 농락 유린당하여 왔던 바이다. 최근의 일만 보아서 세인들은 감시하였을 것이다. 4.19 직후만 하여도 독재자 총장과 자유당 앞잡이 축출운동이 각 대학에서 발달하였을 당시 본 연세대에서도 당시 총장이며 이사장이었던 백낙준의 축출을 운동을 하려 하였으나 일개인의 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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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당 강경파, 원내복귀 결의에 크게 반발
일자 : 1965.9.29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데 대해 즉각적으로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29일 오전, 윤보선 씨 집에 모인 강경파 중진인사들은 “원내복귀 결의는 민중당에 대한 쿠데타행위”라고 단정, 단호한 모든 조치를 다 하기로 했으며, 민족수호민중당정화동지회는 “매국협정을 합법화시키려는 반민족적 행위”라고 주장, “사퇴의원들의 국회출석을 실력으로 저지하겠다.”고 선언했으며, 50여 명의 강경파 당원들은 관훈동 민중당 중앙당사에서 박순천 대표최고위원과 원내복귀의원에 대한 모의화형식을 거행했다. 한편 원외 민주계의 지구당 위원장 46명은 29일 정오 시내 대관원에서 모임을 갖고 “원내 주류와는 행동을 같이할 수 없다”는 데 뜻을 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