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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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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한영수
면담자
이영재, 정호기
구술일자
2018. 6. 27
구술장소
4.9통일평화재단
구술시간
184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10.27법난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34 경북 영천 출생

1958 공무원 발령

1962 문공부 조사국 근무 

1977 문공부 종무과장

1980 문공부 중무 담당관

1981 10.27 법난 정화조치 관련 고등법원 징역 8월 집유 1년 선고

1981 고등징계위원회 파면

1993 독립기념관 사무처장


구술내용 요약

한영수는 1934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출생했다. 그는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영천 소재 외사청 공무원이 되었다. 이후 인천과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1962년 문화공보부 조사국으로 근무지를 변경했다. 1980년 신군부의 정화조치가 실시될 당시에는 문화공보부 종무담당관이었다. 그는 종교부문 전반에 관한 정부의 업무를 담당하는 고위공무원이었다. 

1970년대부터 신군부가 집권할 시기까지 불교계(조계종)의 내부 갈등이 있었으나, 자정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한영수는 종교계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비록 불교계의 갈등이 있었으나, 이를 정화하다는 것을 빌미로 군대와 공권력을 동원하여 짓밟은 일련의 조치는 부당하다.

계엄사령부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10월 27일과 30일에 불교의 전국 사찰들을 유린하고, 불교계 인사들을 연행 및 고문했다. 10·27법난으로 인해 다수의 불교계 인사, 특히 스님들이 큰 피해를 보았으나, 한영수와 같이 무고하게 피해를 본 민간인들도 있었다. 한영수는 10·27법난 직후인 11월 3일 보안사로 연행되어 커다란 고초를 겪었고, 이후 한보와 독립기념관 등에서 근무했으나, 삶과 생활은 피폐했다고 한다.

정부 차원의 10·27법난 명예회복과 보상은 문제와 한계가 상당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증언과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피해자들 개개인이 아닌 종단을 중심으로 하는 피해보상은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불교재산관리법을 둘러싼 종단의 갈등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