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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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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이근우
면담자
이영재, 정호기
구술일자
2018. 6. 26
구술장소
4.9통일평화재단
구술시간
201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10.27법난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74 학교법인 청담학원 설립이사

1979 상지대학교 행정학과 강사

1980 청담학원 기획실장 

1980 10.27 법난 당시 보안사 연행 

1981~ 낭인생활

1993. 3. 1 청담종합고등학교 교장 취임

2005. 2. 25 청담정보통신고등학교 교장 퇴임

2006.~ 현재 청담학원 이사 재임


구술내용 요약

이근우는 1942년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출생했다. 그의 형은 1938년에 출생한 이근배이며, 1956년에 출가하여 혜성 스님이 되었다. 혜성 스님은 서암 스님을 은사 스님으로 출가했으나, 서암 스님의 소개로 청담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아버지와 청담 스님은 일제 말부터 인연이 깊었다.

혜성 스님은 청담 스님의 불교정화운동을 지지하고, 청담 스님을 지극히 봉양했다. 혜성 스님은 청담 스님의 쉴 곳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도선사와 인연을 맺었고, 도선사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혜성 스님은 박정희 정권과 친밀한 관계였으며, 도선사의 발전과 성장에 도움을 받은바 적지 않다. 혜성 스님은 사회사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스님을 찾아온 팽성학원 김용태의 권유로 이를 인수한다. 스님은 부실하고 비 인가였던 팽성학원을 정상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청담학원으로 개칭했다.

1980년 10·27법난으로 혜성 스님도 연행되었다. 혜성 스님은 경찰특수수사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스님에 적용되었던 주요 죄목은 횡령이었으나,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스님은 검소하게 생활했으며, 도선사와 청담학원의 성장과 발전에 헌신한 사람이었다. 경찰로부터 고문을 동반한 조사를 받은 혜성 스님과 구술자는 후유증을 앓았다. 10·27법난의 가해자들은 전창렬, 양근하, 군법사 등이었다. 

석방된 혜성 스님이 돌아갈 곳은 없었다. 혜성 스님의 사회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서의현 스님이 총무원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혜성 스님의 승적이 복원되었다. 스님은 차츰 청담학원과 도선사를 되찾았고, 불교사업에 복귀했다. 혜성 스님은 경찰의 조사를 받던 중 입수한 ‘견지동 45계획’이라는 문서를 기반으로 10·27법난 진상규명운동을 전개했다. 스님은 10·27법난에 관한 초반기 진상규명운동을 이끌고 지원했던 대표적인 사람이다.

구술자는 정부 차원의 10·27법난 명예회복과 보상에 문제가 많다고 본다. 법난의 진상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배제한 점은 무엇보다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의 요구를 충분하게 수렴하지 못했고, 진상규명도 미흡하다고 평가한다. 피해자들 개개인이 아닌 종단을 중심으로 하는 피해보상은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스님 150여 명이 정화대상으로 선정된 사연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