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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
사업개요
- 5.17 정화조치와 법난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1차 연도에서는 10·26 사태 이후 신군부의 권력 장악 과정에서 자행된 국가폭력과 재야·학생·노동·언론 등 각 분야의 민주화운동 탄압 사례를 채록하였다. 특히 신군부가 불교계에 시행한 이른바 ‘정화조치’인 ‘10·27법난’에 주목하여, 피해 당사자인 승려 2명, 공무원 1명, 신도 1명의 구술을 확보함으로써 사건의 실체를 조명하였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삼보
- 면담자
- 정호기, 한은영
- 구술일자
- 2018. 07. 04
- 구술장소
- 강원도 영월군 법흥사
- 구술시간
- 213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10.27법난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65. 삼척 소재 신흥사에서 탄허 스님을 은사 스님으로 출가
1966∼1969. 동국대 선원장으로 부임한 탄허 스님을 따라 동국대에서 생활
1970. 베트남전쟁에 해병대(청룡부대) 참전. 의가사 제대
1977. 오대산 상원사 주지
1980. 10. 27. 강원 횡성 소재 보광사에서 경찰과 보안사에 의해 연행
1980. 11. 17. 제1군 사령부 법당에서 체탈도첩, 서약서 작성, 강제 환속식
1980. 12. 4. 삼청교육대(제36사단) 입소
1981. 1. 4. 삼청교육대 출소
1982. 정암사 주지
2008. 12. 30.∼ 2016. 6. 20. 10ㆍ27법난 피해자 명예회복 및 심의위원회 제1∼3기 위원
- 구술내용 요약
-
삼보 스님은 1950년 강원도 거진에서 출생했다. 우체국에서 근무하던 스님의 아버지는 1951년 2월경 선박을 이용해 삼척으로 남하하다 배가 파손되어 해상에서 사망했다. 어머니는 생활력이 매우 강하신 분으로 4남매를 양육했다. 스님이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출가한 상태였다. 스님도 1965년 신흥사에서 탄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큰 형도 2달 후 출가했고, 이후 누나도 출가했다.
삼보 스님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있다가 탄허 스님이 동국대학교 선원장에 임명되자 시봉으로 상경했다. 1970년 해병대에 지원하여 포항에서 근무했는데, 그해 말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었다. 의가사제대한 스님은 월정사로 돌아와 총무와 상원사 주지를 겸했다. 1980년도에는 상원사 주지를 사임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 재학했다. 그해 10월 26일 어머니의 일을 돕기 위해 보광사로 내려왔다가, 다음 날 새벽 강원도 보안대(천일공사)로 연행되었다.
신군부의 정화조치 대상자가 된 스님은 가혹한 폭행을 동반한 조사를 받았다. 조사의 내용은 간첩 접촉, 횡령, 축재, 여자관계 등이었다. 그러나 수사관들은 어느 하나 입증하지 못했다. 스님은 제1군 사령부 법당에서 강제 환속식을 치렀고, 체탈도첩되었다. 그리고 삼청교육대(제36사단)로 이첩되었다. 스님은 지옥과 같은 삼청교육대를 마치고, 1981년 1월 4일 석방되었다.
월정사로 돌아온 스님은 1982년 승적이 복원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암사 주지가 되었다. 1984년 녹원 스님이 총무원장에 취임하면서 승적이 복원되었다. 1988년에 촉발된 10·27법난 진상규명운동은 여러 이유들로 참여하지 않았다. 2005년에 재개된 10·27법난 진상규명운동부터는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2번에 걸쳐 할복을 단행했다. 스님은 10·27법난피해자명예회복및심의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했다. 종단은 스님의 위원 참여를 선호하지 않았으나, 굳은 신념과 확고한 목적으로 위원회가 해산할 때까지 활동했다. 삼보 스님은 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그러한 인식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스님은 불교계가 10·27법난을 교훈삼아 새롭게 태어나야 하며,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태국으로 출국하기 전 보안대에 끌려간 이야기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