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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추협_ 1987년 직선제개헌쟁취의 불씨를 당기다
요약설명 : 강당에서 신한민주당(신민당) 창당발기인대회가 열렸다. 1985년 2월 8일, 김대중은 총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전두환 정권은 “귀국하면 신변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라고 협박했지만, 목숨을 걸고 귀국을 강행한 것이다. 김대중의 귀국은 선거 판도를 바꿀 만큼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생존 가능성 제로에 가까웠던 신민당은 2월 12일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총 148석을 얻어 여당이 된 민정당(지역구 87석, 전국구 61석)에 이어 총 67석(지역구 50석, 전국구 17석)을 얻어 제1야당으로 떠올랐다. 엄혹했던 5공 정권에 균열을 낸 김영삼의 단식투쟁은 김대중의 공조로 이어졌고,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연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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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의 6월민주항쟁
요약설명 : 최루탄 추방과 직선제 개헌을 요구했다. 이들은 6.10민주항쟁의 열기를 모아 8월에는 각 지역의 동포들과 함께 청년 중심의 재미한청련과는 별도의 조직인 한겨레동포운동연합을 결성하여 세대를 망라한 운동의 대중화와 전국적인 조직화를 이루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한편 6월 28일, 워싱턴에서 ‘조국을 위한 대기도 및 궐기대회’가 열렸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조국민주화촉구 워싱턴위원회 등의 단체와 목사, 신부들이 함께 했다. 이들은 백악관 앞에서 기도를 한 후 국무부까지 도보시위를 벌였다. 민주화를 촉구하는 각종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직선쟁취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는 4시간가량 진행되었다. 그러나 6.29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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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과 권력 사이 - 어느 야당의 선택
요약설명 : 구성하고 민주화운동 세력을 지원했다. 1986년 2월 12일, 신한민주당은 다가오는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직선제로 실시할 것을 주장하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과 함께 '1천만 명 개헌서명운동'을 시작했다. 3월 11일 ‘개헌추진위원회 서울지부 결성대회’를 시작으로 '1천만 명 개헌서명운동'에 본격 돌입했다.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집회에서 강하게 표출되었다. 신한민주당의 지역순회 집회는 3월 23일 부산집회에 10만 명, 4월 19일 대전집회에 10만 명, 26일 청주집회에 2만 명,5월 3일 인천집회에 10만 명, 10일 마산집회에 5만 명, 31일 전주집회에 1만 명이 참여했다. 신한민주당의 옥내집회가 끝나면 옥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