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6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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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정기 총회[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등록번호 : 00861475
날짜 : 1986.01.0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최교진
요약설명 : - 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 회칙 - 글쓰기회 결성 발기문 ; 어린이를 위한 참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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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86-1[제3회 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 연수회및 총회 관련]
등록번호 : 00861434
날짜 : 1986.01.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최교진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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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 소식
등록번호 : 00861467
날짜 : 1985.11.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최교진
요약설명 :
사료 콘텐츠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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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성사를 풍미한 재야 경제학자 박현채요약설명 : 평생 ‘보따리장사’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갔다. 이즈음 서울 상대 학생 서클인 후진경제연구회가 박현채를 초청했는데, 그는 이 모임에 나가 젊은 후배들과 열정적으로 토론하며 연구 활동을 계속했다. 1964년 들어 중앙정보부가 인혁당사건을 조작 발표했을 때, 박현채는 중앙정보부와 검찰에서 각각 20여 일 동안 취조를 받으면서 잔인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이듬해 1월에 무죄 선고를 받은 박현채는 도예종에 대한 은닉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서울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출옥 후 그는 또다시 서울대, 홍익대, 국민대, 경희대, 충남대, 한신대 등의 시간강사로 밥벌이를 했다. 1970년대에 ‘민족경제론’의 포문을 열었던 박현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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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련과 분신정국 - 죽음의 굿판이었나, 희망의 몸부림이었나요약설명 : 고교 시절부터 학내 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고 안동대 민속학과에 입학한 뒤에는 민속문화연구회를 꾸려 초대 회장으로 활약했다. 친구들은 말한다. "초반에 잘 나가던 아이들은 대개 시간이 지나면 도서관에 처박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영균이는 달랐지요. 학생운동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이크 잡고 선동 잘하는 아이들은 글쓰기나 동아리활동은 잘 못하는 편인데 영균이는 특이하게도 이 둘을 골고루 잘하는 녀석이었지요. 그러나 아무도 그가 분신하리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습니다." 그해 5월 1일, 12시 20분께 '고 강경대 열사 추모 및 강온통치 분쇄를 위한 범안동대인 결의대회' 도중 김영균은 분신했다. 동료들은 김영균이 제...
구술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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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석면담자 : 이영재
일자/장소: 2024.8.13./전교조 부산지부 회의실
요약설명 : 이어진 글쓰기연구회 활동 - 1980년대 초반 교육운동과 글쓰기연구회 - 교육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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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면담자 : 이영재
일자/장소: 2024.8.12./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의실
요약설명 :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결성 - 교육민주화운동의 맹아기 -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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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총
면담자 : 예대열
일자/장소: 2010년 7월 17일/홍제동 구술자 자택
요약설명 : 『마산의 혼』, 한국국사연구회, 1961. 고대신문사, 『고대신문 축쇄판 』2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