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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총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김병총
- 면담자
- 예대열
- 구술일자
- 2010년 7월 17일
- 구술장소
- 홍제동 구술자 자택
- 구술시간
- 1시간 30분 44초
구술컬렉션 > 4.19혁명 > 서울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 1939년 출생 1960년 당시 고려대 철학과 학생으로 고향 마산의 3‧15를 경험하고 4‧18 시위 적극 참여
- 구술내용 요약
-
1) 성장과정과 집안환경구술자는 1939년 경남 통영 세병관(洗兵館)에서 출생했다. 아버지가 진주농고를 나온 후 공무원이 되어 통영으로 발령받아 그곳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친척으로는 이모부가 초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등을 지낸 손원일이 있다. 해방 이후에는 외가였던 마산으로 이사와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마산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면서 교편을 잡았기 때문에,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고등학교는 지역 명문인 마산고등학교를 나왔다. 학창시절부터 글쓰기 재주가 있어 고등학교 3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었다.2) 대학진학과 마산시위 경험구술자는 문학에 소질이 있었지만, 문학을 하려면 철학과에 가라는 선생님의 권유로 1957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이모부 손원일의 집에서 통학했던 구술자는 통학을 군 짚차로 하는 등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어려움 없이 대학생활을 보냈다.그러다가 방학 중 고향 마산에 내려갔던 구술자는 3‧15를 우연찮게 겪게 되었다. 당시 마산시위에 참가했던 구술자는 총 맞은 사람을 업고 병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고려대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의 눈에 띄어 마산경찰서로 끌려가게 된다. 당시 아버지가 마산지역의 유지인데다가 이모부가 국방부장관이었기 때문에 '고초'를 겪지는 않았지만, 이 경험이 나중에 학교로 올라와 4‧18에 앞장서는 계기가 된다.3) 4‧18 고려대 시위 배경과 전개구술자는 4월 11일 마산에서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된 것을 듣고, 마산의 친구에게 전화로 확인을 했다. 그리고 마산의 상황을 교내 학우들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그렇지만 이미 학생회장단 모임 등 교내에서도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기 때문에 4‧18 당일 다른 역할은 하지 않고, 여러 학생 군중들과 함께 단지 시위에만 참여했다. 그런 점에서 구술자는 4‧18과 4‧19가 단지 지도부 몇몇의 선동으로 시작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당시 모두가 선동자였으며 참여자였다고 한다.4‧18 당일 처음에는 200~300명 밖에 되지 않던 학생들이,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나자 1,000여명 정도가 되어 낮 12시 경에 교문 밖으로 진출했다고 한다. 당시 시민들이 빵도 가져오고 물도 떠다주는 등 호응이 대단했다고 한다.시위대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정치 발언을 하면서 연좌시위를 전개했는데, 지도부가 없는 상황에서 자율적으로 시위가 진행되었다. 시위대를 진정시키기 위해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이철승과 유진오 총장이 나와 연설을 했다. 시위대는 유진오 총장의 회유로 일단 귀교했다. 귀교 과정에서 천일백화점 앞에서 깡패들이 습격을 했는데, 이것이 4‧19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철학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구술자와 함께 독고중원, 김민준 등이 있었다.4) 4‧18 이후 마산 귀향구술자는 학교가 휴교를 하자 고향인 마산으로 내려갔다. 고향에 내려가서 '재경마산학우회'를 통해 당시 마산지역 계엄사령관이었던 김기덕 준장 앞으로 선언문을 쓰고 그것을 마산일보에 게재했다. 그 내용은 "이렇게 안하면, 우리가 또 일어난다"라는 것이었다.5) 6.3항쟁 경험구술자는 대학 졸업 이후 동아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당시 4‧18에 참가했던 경험이 학교에서도 소문이 나서인지, 고등학교 학생회 간부들이 구술자를 찾아와 "선생님, 우리도 해야 안 되겠습니까"라고 했다. 선생 된 마음에 야단을 치면서도 "신념대로 살아야 된다"라는 말을 한 이후, 동아고등학교 학생들이 6‧3시위를 전개했다.이후 "데모 주동교사 색출하라"라는 조치 때문에 구술자는 서울로 약 1년간 피신해 와 있었다. 이로써 구술자는 3‧15, 4‧18, 4‧19, 6‧3 등 역사적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경험을 하게 되었다.6) 4‧18 역사소설 준비구술자는 문인으로서 4‧18에 관련한 역사소설을 준비하고 있다.5. 참고자료변광도 편, 『민주혁명 승리의 기록』, 마산일보사, 1960.지헌모 편저, 『마산의 혼』, 한국국사연구회, 1961.고대신문사, 『고대신문 축쇄판 』2권, 1985.고대신문사, 『고대신문 축쇄판 』3권, 1985.고려대출판부. 『고려대학교 100년사- 고려대학교 학생운동사』, 2005.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4‧18 고대행동과 4월혁명을 통해 조망하는 21세기-4월혁명 50주년 기념학술대회, 2010.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구술상세목록 및 녹취문
- 2010_4월혁명50주년_김병총(4.18고려대시위)_구술자료상세목록.pdf 68505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