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구술 컬렉션 9건
더 보기일지사료 11건
더 보기-
김종필, 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에서 토론회
일자 : 1963.11.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김종필을 초청하자는 쪽에서는 그에게 집중 공격을 퍼부어 군사정권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계기로 삼자는 입장이었고, 이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오히려 김종필의 입지를 강화시켜 줄 위험성이 있고, 토론의 자리를 공개함으로써 학생운동 그룹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하였다. 결국 김종필과의 토론회는 서울대 문리대에서 민비연 주최로 11월 5일 개최되었다. 토론내용은 민족주의, 남북통일문제, 경제개발 5개년계획, 한미관계, 한일관계 등 시국 전반에 걸친 것이었다. 이 토론이 끝난 후 김종필은 대학생들에게 당했다고 하면서 이런 행사를 갖게 된 것에 대해 후회했다고 하며, 박정희로부터 불신과 의혹을 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
서울대·고려대·연대생 약 5,000명, 대일 굴욕외교에 반대하며 5·16 이후 최대 규모 ...
일자 : 1964.3.2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것이다.(이종오, 「반제반일민족주의와 6·3운동」, 『역사비평』 여름호, 1988, 58쪽) 이처럼 한일회담문제를 국내 매판자본과의 결탁의 관점에서 보고 이를 비호하고 있는 박정희 정권을 규탄하는 입장은, 지금껏 한일회담으로 형성될 한일관계 자체가 아닌 단순히 정권 측의 굴욕적인 외교적 태도, 즉 청구권의 액수와 평화선문제, 대일 저자세 등을 문제삼아온 야당 측의 그것과는 초기부터 차별성을 갖는다.(홍석률, 「굴욕외교 반대투쟁과 6·3운동」, 『근현대사강좌』 제6호, 1995, 118~119쪽) 앞서 1961년 4·19 서울대 4월혁명 제2선언문에 ‘지금 이 땅의 역사 사실을 전적으로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반봉건, 반외압세력, 반매판자본...
-
난국타개 학생총궐기대회 준비과정 밝혀져
일자 : 1964.5.2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대중에 기반을 갖지도 못한 조직이 운동 고유의 흐름을 냉각시켰으며, 주최 측의 나약함과 구호의 산발 등으로 대학가 여론의 효과적 집약에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요시자와 후미토시 역시 이 궐기대회는 결과적으로 정부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고, 다만 5·20 시위를 주도한 급진적 지도자가 잇달아 구속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온건파인 이들이 반대운동을 계속 이어갔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그 한계와 의의를 지적하였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화운동사 1』, 돌베개, 2008, 423~430쪽. 이재오,『한일관계사의 인식Ⅰ-한일회담과 그 반대운동』, 학민사, 1984, 205~206쪽. 요시자와 후미토시, 「한국에서의 한일회담반대운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