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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성사를 풍미한 재야 경제학자 박현채
요약설명 : 귀중한 개념어가 되었다. 당시 대학가 최고의 화제작은 리영희의 《전환 시대의 논리》(1974년), 《우상과 이성》(1977년)이었다. 여기에 1978년 한 해 동안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 강만길의 《분단 시대의 역사인식》이 4월부터 8월 사이에 잇달아 출간됨으로써 1970~80년대 한국 지성사의 황금기가 활짝 열렸다. 유신정권의 몰락 이후 5·17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5공 정권은 박현채가 《민족경제론》에서 설파한 “경제 외적 강제로 매개된 수탈은 직접적 생산자로서의 민중을 빈곤에 짓눌리게 하는 중요한 경제적 조건”이라는 대목을 문제 삼았고, “곧 역사는 민중의 생활이며 경제의 직접적 담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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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대_농민운동사의 험로를 개척한 작은 거인
요약설명 : 글들을 교재로 사용하면서 야학 학생들의 교양 수준을 높여 주었다. 권종대는 1966년 봄 형해고등공민학교의 국어교사로 부임해 국어와 농업, 역사를 가르쳤고 그해 8월, 가나안농군학교에 입교해 새로운 농업기술과 지식을 배웠다. 농촌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가야겠다는 사명의식이 싹튼 기간이었다. 1971년에는 영덕여자중학교 교사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1976년 12월 14일, 권종대는 전국농업기술자대회에 참석하여 시야가 확 트이는 경험을 했다. 한국가톨릭농민회(가농) 교육부장 정연석이 ‘쌀 생산비 조사 보고’를 발표를 했는데 “과학적인 조사를 토대로 쌀 생산비를 보장하라는 대정부투쟁을 했다”는 사례들이 생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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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피해를 보상하라
요약설명 : 년 12월 30일 현재 4개 면, 1개 읍, 9개 마을, 160 농가를 조사한 결과 피해액이 309만원으로서 호당 평균 19,000원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추산한 함평군의 총 피해액은 1억 4천여만 원에 달했다. 1977년 4월 가농 전남연합회는 각계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보내거나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기도회를 여는 등 지속적으로 피해보상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농민들의 투쟁은 2년에 걸쳐 계속되었지만 농협과 정부의 무성의로 해결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농민들의 참여도 떨어지고 있었다. 긴 시간의 투쟁은 그렇지 않아도 생계가 곤란한 농민들에게 대부분의 피해를 그냥 감내해 내고 체념하게 만들었다. 이에 가농...
구술 컬렉션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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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123.6.13./전주시 기접놀이전수관
요약설명 : - 1977년 4월 전북대 유인물 배포사건, 1977년 4월 전북대 유인물 배포 사건을 둘러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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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렬
면담자 : 오세제
일자/장소: 2008. 10. 16./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어린시절, 4.19를 겪은 경복중고 시절과 재수, 서울대 인류학과 입학, 문리대 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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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원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21./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요약설명 : - 1977년 4월 19일, 경북대 시위 미수 - 1977년 11월 1일, 경북대 학도호국단 검열일...
일지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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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경희대 연합데모, 관련자 체포로 미수
일자 : 1975.11.17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서울대생들과 경희대생들이 연합하여 반독재 시위를 계획하고 유인물, ‘민주·민족 통일의 깃발을 높이 들자’를 작성하여 시위 당일 날 각 대학에 동시에 뿌리기로 했다. 그러나 예정된 17일은 준비 부족으로 18일로 연기하여 감행하려 했으나 정보가 누설되어 17일 저녁, 관련자가 체포되어 중단되었다. 이 사건 관련 구속자 및 형량은 다음과 같다.▲ 신동수(서울대 4): 수배, 1977년 12월 구속, 징역 1년 6개월, 목포교도소에서 만기 출소 ▲ 박인배(서울대 3), 원혜영(서울대 2), 유진권(서울대 3), 김봉우(경희대 2), 신현태(경희대):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 최인창(동대 4): 집행유예 ▲ 변용의(서울교대 2): 선교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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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농민회 춘천교구 연합회 회장 유남선,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일자 : 1978.4.6
분류 : 민주화운동 > 농민
요약설명 : 총무 김문돈과 제작한 1977년 12월 27일자 유인물 중 “농민들의 민주화 능력 부족이라는 미명하에 조합장을 국가가 임명하여 조합장은 농민이 아닌 장관, 도지사, 군수에게 충성한다. 농협의 대의원인 총대는 저희들끼리 적당히 임명하여 총대선거권자인 농민은 자기들의 총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는 문장과 학원시위에 관한 소식 내용 일부를 문제 삼아 1978년 2월 2일 유남선 회장과 김문돈 총무를 연행, 수사한 바 있다. 3월 20일 유남선 회장이 석방되며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경찰은 4월 6일 유남선 회장을 전격적으로 연행, 긴급조치 9호로 구속한 것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역 민주화운동사 편찬을 위한 기초조사연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