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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원
사업개요
- 유신 후기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 2023년 수행된 ‘유신 후반기 민주화운동 역사정리사업’ 구술 채록은 지역 차원의 활동에 집중했다. 전문가 자문과 지역별 의견 수렴을 거쳐 강원, 대구·경북, 대전·충남, 전북, 충북을 공간적 범위로 설정했으며, 1970년대를 중심으로 전후의 주요 사건과 활동을 포괄해 운동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이번 채록은 상대적으로 사료가 부족한 지역 민주화운동을 조명해 기록의 공백을 채우고, 운동사의 전반적인 복원과 정리에 기여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유신 후반기의 특수성을 규명함으로써 1980년 ‘민주화의 봄’을 거쳐 1980년대 초반으로 이행하는 전환기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실증하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장수원
-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 구술일자
- 2023.7.21.
- 구술장소
-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 구술시간
- 2시간 54분 51초
구술컬렉션 > 1970년대 민주화운동 > 유신 후기와 80년대 전반기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56. 경북 영양군 출생
1975. 3.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입학
1976. 3. 언어문화연구회(일명 正言會) 창립 주도
1977. 3 복현독서회 창립 및 활동
1977. 4. ‘4‧19 기념행사’ 준비 → 실패
1977. 11. 1. 시위 준비 → 훈방 조치
1978. 11. 2. ‘제1차 민주구국선언’ 낭독 및 교내시위 → 구속
1979. 8. 15. 형집행정지로 석방
1980. 2. 경북대학교 복학
1980. 8. 경북대학교 졸업
1982. 3. 원화여자고등학교 교사 부임
1984. 8. 15. 복권
2001. 3. 원화여자중학교 교사 부임
- 구술내용 요약
-
장수원은 1956년 경북 영양군에서 출생했고, 중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시기에 가족 전체가 안동으로 이사했다. 2년 후 다시 대구로 이사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경북대 문리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1976년 3월 언어문화연구회 창립을 주도했다. 1977년에는 언어문화연구회의 후신인 복현독서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들은 1977년 4월 19일 4월혁명 기념행사를 계획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1977년 11월 1일에는 경북도 학도호국단 검열일에 시위를 벌이려 했으나 다시 좌절한다. 1978년 11월 2일 경북대 시위, 즉 1차 민주구국선언을 전개하여 당일 연행되고 11월 7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이들이 구속된 날 경북대에서는 2차 민주구국선언 시위가 일어났다. 1979년 8월 15일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으나, 사건이 발발한 직후 제적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장수원은 활동과 수감 그리고 석방 후 후유증이 컸다. 우선 구속되어 있던 동안 동생이 같은 동아리에 가입했고, 민주화의 봄 국면에 수감되었다. 화원교도소에 감금된 상태로 북부경찰서에 호출되어 물고문을 수차례 받았다. 민주화의 봄 국면 학내외 시위에 참여했으나, 용케 예비검속을 면했다. 1980년 8월에 경북대를 졸업했고, 1982년 3월에 교사로 임용되었다. 복권된 시점은 1984년 8월 15일이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유신말기 시위 주동의 의미와 각오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