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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규
사업개요
- 유신 후기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 2023년 수행된 ‘유신 후반기 민주화운동 역사정리사업’ 구술 채록은 지역 차원의 활동에 집중했다. 전문가 자문과 지역별 의견 수렴을 거쳐 강원, 대구·경북, 대전·충남, 전북, 충북을 공간적 범위로 설정했으며, 1970년대를 중심으로 전후의 주요 사건과 활동을 포괄해 운동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이번 채록은 상대적으로 사료가 부족한 지역 민주화운동을 조명해 기록의 공백을 채우고, 운동사의 전반적인 복원과 정리에 기여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유신 후반기의 특수성을 규명함으로써 1980년 ‘민주화의 봄’을 거쳐 1980년대 초반으로 이행하는 전환기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실증하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이완규
-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 구술일자
- 2023.7.5.
- 구술장소
- 대전 시청자미디어센터
- 구술시간
- 3시간 23분 46초
구술컬렉션 > 1970년대 민주화운동 > 유신 후기와 80년대 전반기 지역 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54. 대전시 중구 출생
충남기계공고 전력과(야간부) 입학
1973. 충남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기계공학과 입학
1975.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연행 (6. 23. 제적)
1976.〜1977. 군 복무
1978. 11. ‘청람회’ 결성
1980. 2. 29. 복권
1980. 2.〜 5. 학원‧사회 민주화투쟁 (5. 1. 충남대생 가두시위→ 10여 일 구금)
1981. 9.〜10. 청람회 사건 →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선고
1983. 8. 13. 광복절 특사로 석방
1985. 3. 15. 충남민주운동청년연합(충남민청) 참여
1987. 4. 13. 충남민주운동청년연합 중앙위원 선임
1988. 2. 27. 복권
- 구술내용 요약
-
이완규는 1954년 대전시 중구에서 출생했다. 거주지 골목에는 또래의 민주화운동 참여자들이 여럿이었다. 경제적인 형편상 공업계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 충남대 공과대학 기계과에 입학했다. 대학도 생활비를 벌며 공부해야 해서 학생운동에 긴밀하게 결합하지 못했다. 직접 관련한 사건은 1974년 10월 14일 충남대 시위를 구상하고 사용할 유인물의 제작이었다. 학교는 다음 날 휴교령을 내렸고, 11월 25일 개강했다. 두 번째는 1975년 3월 검은 리본 패용 사건이었다. 학교가 죽었다는 의미로 벌인 일종의 시위였다. 이 일로 인해 학장의 자택에 보호조치를 받기도 했으나, 도망쳤다. 그 외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세 번째는 1975년 5월에 발생한 서신 검열로 긴급조치 9호 위반을 적용받았다. 학교에서는 바로 제적 처분이 내려졌고, 7월 16일 재판을 받아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폭행을 당해 지금도 후유증이 남았다. 학생 신분이 사라지자 바로 영장이 나와서 우여곡절 끝에 군 복무를 했다. 병역을 마친 후, 강구철, 오원진, 이범구, 우영재, 심재철, 김필중 등과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이를 바탕으로 1978년 11월 청람회가 조직되었다. 1979년 11월 29일 충남대 ‘시국선언문’ 배포 사건에도 관여했다. 1980년 민주화의 봄 국면에는 충남대 총학생회 선거와 시위 등에 관여해 도피 생활을 했다. 청람회는 1981년에 조직 사건화되었다. 이완규도 구속되어 1982년 9월 23일 유죄판결을 받았고, 1983년 8월 13일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1985년 3월 결성된 충남민주운동청년연합 창립에 참여하는 등 지역 민주화운동에 결합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1975년 3월 검은 리본 사건, 충남대학교 청람회 결성과 주요 인물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