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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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육군 일병 서영완씨가 쓴 양심선언서]
등록번호 : 00090908
날짜 : 1989.04.1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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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勞 第374號
등록번호 : 00538434
날짜 : 1990.05.31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한국YMCA전국연맹
요약설명 : 제28차 철도노사협의회-업무량에 따른 정원확보 각종 수당 현실화 촉구 주장:협정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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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시민 여러분! 이 참혹한 죽음앞에 피가 거꾸로 솟고 있습니다.
등록번호 : 00842249
날짜 : 1992.11.0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1992년 10월 28일 주한 미군 2사단 소속 케네스 마클(Kenneth Lee Markle Ⅲ) 이병이...
사진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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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 전적비 옆에서 24년전 승전을 설명하는 당시 6사단 참모장
등록번호 : 00719800
날짜 : 1975.06.2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17일부터 28일까지 국군6사단의 용문산~화천 전투를 회상하며 당시의 참모장 차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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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와 함께 내한한 미국 오클라호마 주지사 보렌이 환영의 화환을 목에 걸고있는 모습
등록번호 : 00723985
날짜 : 1976.09.2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28일, 미국 오클라호마 주지사 데이비드 L 보렌이 방한했다. 보렌 주지사는 한국전쟁...
구술 컬렉션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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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용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일자/장소: 2020.7.25. /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
요약설명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보안대 조사 중 구타를 당한 경험과 기억 출생과 가정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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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일자/장소: 2020.8.31. / 민주인권기념관 회의실
요약설명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중부경찰서에 끌려가 강제징집 당한 사연 출생과 가정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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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기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일자/장소: 2020.8.7. / 서울시 구술자 사무실
요약설명 : 난항, 사단 보안대의 조사, 녹화사업, 전역 이후 군과의 연계, 복학, 후유증과 피해,...
일지사료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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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예비사단이 경찰에 연막탄 33발 제공
일자 : 1960.3.26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국회
요약설명 : 국회마산사건조사반은 26일 오후 조사에서 시장, 특무대장, 39사단장을 비롯한관 계증인을 심문하고, 마산사건 진압에 사용된 연막탄이 39예비사단에서 제공된 사실을 밝혔다. 이 사실은 마산 특무대장김창희 중령의 증언및 39예비사단장 김희덕 준장에 의하여 증명되었다. 김희덕 준장의 증언에 의하면 15일 밤 10시 경 사단 참모장으로부터 경찰에서 최루탄을 빌려달라는 연락을 받고 이를 지시하였는데, 사무착오로 연막탄으로 잘못 주었으나곧 회수하였다고 한다. 이때 빌려준 연막탄은 33발로 그중 5발 을 경찰이 사용하고 나머지 28발을 회수했다고 증언하였다.『조선일보』1960. 3. 27 조1면 ;『동아일보』1960. 3. 27 조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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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마산사건 당시 연막탄 대여는 김희덕 준장의 단독조치라고 해명
일자 : 1960.3.29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육군당국은 29일 마산사건에 관하여 39예비사단에서 경찰에 연막탄 33발을 제공한 것은 39예비사단장 김희덕 준장의 조치에 의한 것이며 육군 참모총장이 이를 지시한 일은 없다고 해명했다. 김희덕 준장은 경찰의 요청에 의하여 사단참모장의 건의로연 막탄 33발을 내주었으며 그중 3발이 사용되고 28발은 그 후 회수되었다고 말하였다.『동아일보』1960. 3. 30 조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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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으로부터의 원정시위로 감격과 불안의 쌍곡선
일자 : 1960.4.26
분류 : 시위 상황 > 마산
요약설명 : 39사단 병력이 대거 투입되었는데, 계엄군이 난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김평도(40)와 김종술(16) 등 2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이날 밤 자정이 가까워서야 계엄군의 완강한 제지와 마산의 민주당원과 학생간부들의 적극적인 만류로 원정시위대는 마산상업고등학교 강당과 무학국민학교 교실에 분산, 배치되었다.3·15의거 기념사업회, 425-426쪽. 이들은 다음날인 4월 27일 아침 민주당 간부 이양수의 설득으로 자신들이 몰고 온 차량과 제15헌병 마산파견대 에서 주선한 열차편으로 부산으로 돌아갔다. 이들 중 일부 200명은 27일 아주 이른 새벽인 0시 30분 경, 트럭 3대에 분승하고 근처의 가야로 몰려갔다. 이들은 가야에 약 1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