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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기
사업개요
- 강제징집 녹화사업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3차년도 과제인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 구술 채록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기 생산된 자료 및 연구 성과의 사실관계를 재규명하고, 보다 완전한 역사 자료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 및 각 대학 민주동문회와 협의하여 대학·지역·유형별 사례를 고려한 구술 대상을 선정했다. 구술 채록에는 서울시립대, 연세대, 전남대, 한국외대, 경희대, 동국대, 서울대, 성균관대, 경북대, 고려대, 대구대 등 전국 주요 대학의 사례를 포괄했다. 본 사업은 1980년대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구체적인 실행 체계와 세부 피해 사례를 파악하고 당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실상을 실증적으로 기록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윤병기
-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 구술일자
- 2020.8.7.
- 구술장소
- 서울시 구술자 사무실
- 구술시간
- 157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강제징집 녹화사업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61. 경북 청송 출생
1980.2 대구 달성고등학교 졸
1996.2 경희대 사학과 졸
1986.1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소조원
1989.10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사무처장
2003. 6 개혁당, 열린우리당 실행위원
2011.3 인천시설공단
- 구술내용 요약
-
윤병기는 1961년 경북 청송에서 출생하고, 초등학교 2학년부터 대구에서 생활했다. 1980년 2월에 대구 달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3월 경희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다. 1980년 민주화의 봄 국면에 나름의 방식으로 참여했으나, 학생운동에 몸담은 것은 아니었다. 흥사단아카데미에 가입하여 서클활동을 했다.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을 했던 것은 1980년 2학기 중간고사 직전 무렵이었다.
경희대 학생운동과 관련한 주요 사건들을 지켜보았거나 참여했으며, 백단학회로 파견되어 공개활동을 하기도 했다. 주요 사건은 1980년 9월 9일 유인물 배포와 자해사건, 1982년 6월 11일 도서관 앞 시위, 1982년 10월 공대 이전과 건축과 폐지 반대시위였다. 이들 사건과 관련해 학생들 일부가 강제징집이 되었다. 윤병기는 1982년 10월 사건과 관련되어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고, 특수학적변동자로 분류되어 혼자만 강제입영이 되었다.
윤병기는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대구 집에 내려와 칩거하던 중에 1983년 3월 30일 천안 공설운동장으로 소집되었다. 주거지나 주소지와 전혀 무관한 천안 공설운동장으로 징집이 되었고, 101보충대를 걸쳐 28사단 신병교육대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28사단 신병교육대에는 16명의 강제징집자들이 있었다. 매일 밤에 진술서를 작성했으며, 16명이 4·19기념식을 갖기도 했다. 28사단 82연대 3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군생활은 감시 하에 이루어졌고,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 특히 선임하사의 괴롭힘이 극심했다. 사단 보안대로 호출되어 10여 일 동안 조사를 받았다. 사단 조사를 받은 후에는 군생활이 나아졌으나, 선임하사의 폭행과 구타는 계속되었다. 휴가와 복귀는 보안대 신고 절차를 걸쳐야 했다.
1985년 6월 15일 전역한 후, 1986년 1월경부터 노동현장에 투신했다. 경희대 선배들의 소개로 인천지역에서 오랜 기간 노동운동을 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1996년에 경희대를 졸업했다. 2003년에 선배들의 정당활동을 도왔고, 현재는 인천시설관리공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재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군복무 시절 자신에게 온 편지들이 검열당한 이야기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