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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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계와 삼류 시인
요약설명 : 전,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6.3데모가 한창이던 때 1964년 4월호에 ‘한일회담반대 선전 유인물’을 삽입하고 제본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를 탐지한 경찰 정보계통에서는 이를 저지시키려고 잡지 출고 전 날에 시경과 각 경찰서에서 차출한 시경정보계 형사를 포함해 총 9명이 들이닥쳤다더군요. 사상계 출고 금지 명령이 떨어졌던 거죠.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제가 있을 때도 사상계 잡지 제작과 판매에 관련된 업체 곧 인쇄소, 제본소, 도소매 서점 등 관련업계에 대한 방해와 압력이 더 거세져서 제작을 할 수가 없게 만들었어요. 관련업계에서는 불가피하게 제작을 기피하게 되니 잡지를 발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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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한일회담반대운동
요약설명 : 없다. “집 팔아서 데모 자금으로 썼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었기 때문에 사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게 당연하다. 사료의 절대 부족을 보완하는 또 다른 사료가 당사자의 기억, 즉 구술이다. 6·3학생운동의 봉화를 올린 3·24시위는 서울대에서 오후 1시 20분, 고려대에서 3시, 연세대에서 4시 5분에 각각 시작되었다. 3개 대학이 시간차를 두고 연쇄적으로 거사를 한 것은 주모자들이 연대하여 전술을 쓴 결과이다. 이를 확인해준 것이 현승일(전 국민대 총장)의 구술이다. 김중태, 김도현과 더불어 ‘6.3 삼총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는 이런 시간차 거사가 세 대학의...
구술 컬렉션 7건
더 보기일지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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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민비연 수사결과 발표, “민비연은 반국가단체”
일자 : 1967.7.25
분류 : 분류없음 > 정부·여당
요약설명 : 합법을 가장 한 단체로 만들었으며 ③ 5.16직후인 61년 5월 23일 동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원 이원찬이 임석진에게 황성모가 검거됐는지의 여부를 조사보고 하라고 지령 한 사실이 있고 ④ 피의자들은 자기들이 민비연을 만든 후 황을 피동적으로 지도교수로 추대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여러 가지 점으로 볼 때 황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능동적으로 민비연을 조직했으며 당시의 관련 학생들은 민비연이 정부전복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인 줄 알고도 이를 구성 또는 가입한 혐의가 드러났으며 객관적인 증거로는 6.3데모 등 몇 차례의 과격한 데모를 민비연이 주동했었다는 점을 열거했다.『동아일보』 1967.7.25. 1면, 『경향신문』 1967.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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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경, 대학생 민간인 등 5명 데모 주동혐의로 구속
일자 : 1969.9.24
분류 : 분류없음 > 정부·여당
요약설명 : 이의관 씨(26, 3선개헌반대범투위 청년분과위원) 등 학생 3명과 민간인 2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구속했다. 구속된 이의관 씨와 권오룡 군(19, 우석대 경제과 2년)은 ‘4.19 6.3범청년 민주수호투위’ 소속 박정훈 씨(구속 중)의 조종을 받아 우석대학생 데모를 주동한 혐의며 민간인 박동인 씨(31, 3선개헌반대범투위 청년분과위원)와 이철흥 씨(30, 4.19 6.3범청년민주수호투위 조직국장)는 동국대학생 데모를 배후 조종한 혐의고 나머지 학생 이진탁(26, 동국대 정외과 4년)은 이들의 교사를 받아 동국대학생 데모를 조종한 혐의다.『동아일보』 1969.9.24. 3면, 『경향신문』 1969.9.2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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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구출위원회, '김지하 문학의 밤’ 행사 개최
일자 : 1978.12.21
분류 : 민주화운동 > 문화·예술
요약설명 :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감옥살이는 다 합치면 현재 6년에 가깝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6.3사태 데모의 주동자라 해서 100일간을, 1970년에는 〈오적〉 사건으로 100일을, 1972년에는 〈비어〉 사건으로 마산에서 연금 생활 100일을, 1974년 4월부터 이제까지 5년간이나 민청학련 사건으로 인해 서대문구치소에서 엄중한 감시 아래 독감방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군사비밀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형으로 감형되어 1975년 2월에 특사령으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나왔으나 27일 뒤에 다시 투옥된 것입니다. 그가 다시 기소된 것은 옥중의 작품 메모 수첩의 내용이 용공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