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건
더 보기사진사료 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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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을 들고 3선개헌반대 시위하는 신민당 의원들
등록번호 : 00734280
날짜 : 1969.08.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망국적 개헌안 정부 직송은 불법무효다" "3선개헌 철회하라" "3선개헌 결사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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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개헌반대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는 신민당 의원들
등록번호 : 00734279
날짜 : 1969.08.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망국적 개헌안 정부 직송은 불법무효다" "3선개헌 철회하라" "3선개헌 결사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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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에서 3선개헌반대 시위 중 경찰에 연행되는 시민
등록번호 : 00734253
날짜 : 1969.08.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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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 뚜껑으로 통과시킨 3선개헌
요약설명 : 댕긴 것이었다. 시위는 갈수록 격화되어 7월 1일에는 8천여 명이, 7월 2일에는 6천여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강경하게 진압작전을 펼쳤다. 정부도 바쁘게 움직였다. 예상대로라면 순탄하게 개헌을 단행해야할 시점에 예상 외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던 것이다. 아무리 김신조가 넘어오고, 푸에블로호가 납치되고, 울진 삼척에 무장공비가 와도 민주주의를 지켜야하겠다는 국민적 열망은 그만큼 깊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승만 독재 하에서 이미 그런 경험을 겪을 대로 겪어본 국민들이었다. 7월 8일 전국 29개 대학이 일제히 조기방학을 실시하였다.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만 해도 민주투쟁의 주력부대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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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의 선거부정
요약설명 : 선거를 뜻있는 지식인들은 ‘망국선거’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6∙8선거 이후 박정권의 공작정치가 본격화 된다. 6∙8 부정선거에 대한 대규모 시위로 위기의식을 느낀 박정권은 안보위기를 고조시켜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공작차원의 사건들을 발표한다. 그것이 이른바 ‘동백림사건’, ‘3차 민비련사건’이다. 이런 공작 차원의 사건만들기는 박정희 집권 내내, 그리고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도 이어져 중요 선거시기마다 의례히 엉뚱한 공안사건, 대북사건이 터지곤 했다. 그래서 선거 때면‘북풍’이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거듭되는 관권∙금권선거 속에서도 국민들의 조용한 저항이 독재자의 영구집권에 결정적 장애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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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과 빈민선교로 민주화운동 이끌어간 박형규 목사
요약설명 : 각오를 다진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선언과도 같은 한 마디를 던졌다. “불의한 시대에 성직자가 감옥에 가는 것은 당연하다.” 1967년 한국기독학생회 총무를 맡게 된 그는 1969년 3선개헌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면서 장준하, 함석헌 등 재야인사와 김대중, 김영삼 등 야당 정치인들과 연대해 나갔다. 1972년 서울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임명되어 목회자로서 신망을 받는 한편, 민주화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1973년 4월 22일 남산야외음악당에서 부활절 예배가 열린 날, 박 목사는 민주주의 부활과 독재정권에 대한 투쟁을 선언하는 성명을 발표한 뒤 당국에 체포되었다. 하지만 극심한 당국의 단속 탓에 박형규 목사는 ‘주여 저...
구술 컬렉션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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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면담자 : 유경순
일자/장소: 2009.6.19./경기도 도지사 공관
요약설명 : 고등학교 3학년 삼선개헌반대시위, 공장활동과 청계노조 지원활동, 한일도루코취업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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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화
면담자 : 이창영
일자/장소: 2021.11.5. / 서울시 서대문구 회의실
요약설명 : 입학, 3선개헌반대시위 참여, 군 생활, 함석헌 선생과의 인연, 간디사상연구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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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면담자 : 차성환
일자/장소: 2021.9.5.(1차), 9.6.(2차) / 서울시 종로구 회의실
요약설명 : 3선개헌 반대 투쟁, 군대 강제 징집과 카투사 복무, 10월 유신 선포와 10·2시위,...
일지사료 5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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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청년민주투쟁위원회 침묵시위
일자 : 1969.4.19
분류 : 분류없음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19일 오후 3시경 서울 중구 명동 대성빌딩에서 4.19기념강연회를 마친 범청년민주투쟁위원회(대표최고의원 이기택)는 함석헌·이철승·장준하 씨 등을 앞세우고 약 300명의 청중들과 함께 종로 보신각까지 15분동안 침묵시위를 벌인 후 아무 사고없이 해산했다. 이날 시위대는 기마경관 2명의 호위를 받으며 인도로 행진하면서 간혹 택시에 가설된 확성기로 “3선개헌을 반대한다”는 등 구호를 외쳤다.『동아일보』 1969.4.21. 3면4.19 제9선언문독재독선의 망령이 재림한 민주수난의 회귀점에서 침통한 울분을 억누르고 역사의 소명을 받고자 오늘 우리는 4월 민족의 횃불 아래 모였다. 거대한 공포와 황색 에로문화의 조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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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문들, 3선개헌반대 학생과 경찰의 충돌 보도
일자 : 1969.6.27
분류 : 분류없음 > 해외 및 북한
요약설명 : 3선개헌반대 고대생 데모의 소식은 이 곳 방송국과 신문의 상당한 관심을 끌었으며 한 예로 27일 석간지 『워싱톤스타』는 개헌 문제로 정부 경고를 뿌리친 학생 시가 데모가 벌어진 것은 처음이라는 상세한 서울 발신 기사를 실었다. ‘서울서 정치 항의 위해 학생들 경찰과 충돌’이란 제하(題下)의 『스타』지 기사는 한국 정치가들이 “시위 행동이 봄철 열병처럼 번질지 모른다”고 말했다고 인용했다. 최루탄과 곤봉을 사용한 경찰의 움직임과 개헌반대 뿐 아니라 학원의 정보사찰을 중지하라는 학생들의 주장도 개헌 배경과 함께 보도됐다.『동아일보』 1969.6.2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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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생 2명 즉결에 넘겨
일자 : 1969.7.4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4일 서울서대문경찰서는 연세대 학생 양순철 군(19, 이공대 화공과1년)과 노상래 군(21,문리대 철학과 2년)을 데모 후 처음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을 적용, 즉결에 넘겼다. 경찰은 3일 오후 명동일대에서 3선개헌반대데모를 벌이기 위해 학교를 빠져나와 개별적으로 국립극장 앞길과 부근 다방에 모여 있던 연세대생 55명을 연행 그중 53명은 훈방하고 양 군 등 2명은 투석한 혐의로 즉결에 넘긴 것이다.『동아일보』 1969.7.4. 3면, 『매일신문』 1969.7.4. 7면, 『한국일보』 1969.7.4.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