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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례

구술자소개

구술자
김종례
면담자
김종길
구술일자
2023.8.19.
장소
김종례 자택
구술시간
3시간 42분 40초
구술아카이브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문화예술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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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내용 요약

김종례는 1946년 서울에서 출생. 1961년 중학교 시절, 5‧16 군사정변 지켜봄. (보수적 학풍의) 진명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서울교대에 진학. 서울교대 시절 박광진(1935~) 교수의 영향으로 미술을 배우고, 1967년《국전》에 입선.《국전》입선 작품을 덕수궁미술관에서 박정희가 관람한 후, 당시 장기영 경제부총리에 의해 구입. 졸업 후에도 박광진 교수의 일을 도우며, ‘일요화가회’ 등의 모임의 총무를 맡았고, 민족기록화 사업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음. ‘한국 근대여성 지도자 100인’에 선정.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 결혼과 연이은 출산으로 인해 교직 생활을 그만둠. 1남 3녀 중, 아들이 4살 되던 해 아들을 잃음, ‘죽음’에 대한 화두가 그림에 등장. 1980년대 초, 서초동의 제3화실을 오가며, 김인순, 윤석남 등과의 작가들과 교류. 1982년 이들과 함께 《11인의 소묘전》을 치르고, 이 무렵부터 정문규, 유홍준 등의 도움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함. 1985년 관훈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에서 죽음과 상처, 회복을 주제로 다룬 작품 발표. 1985년 힘전 사건이 뉴스에 보도될 때, 김종례의 작품도 함께 등장, 이 시기 ‘민중이란 무엇인가?’, ‘민중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 김인순 등과 함께 ‘힘전 사건’의 대책 마련을 위한 모임(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 참여. 1985년 ‘시월모임’의 창립에 관여는 하였으나, 개인사로 인해 지속적으로 함께하지는 못함. 1986년에서 1987년 무렵, ‘민미협’ 활동을 하며 《반고문전》, 《통일전》, 《인간전》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하면서, 박종철 열사·권인숙 성고문 사건 등에 작업으로서 발언. ‘민미협’ 안에서 여성미술분과(1986~) 활동을 하면서 여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문화예술운동 안으로 끌어옴. ‘민미협’ 소속의 여성 작가들과 모여 ‘여미연’(1987년 6월 결성)을 만들어내는 데 역할을 함. 김인순·윤석남·정정엽 등과 ‘여미연’ 활동을 하며《여성과 현실전》을 연례적으로 기획하여 한국 여성주의미술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줌. 그림패 ‘둥지’ 활동에 부분적으로 개입하여 여성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다수의 걸개그림 공동제작. 1980년대 여성들의 문제, 특히 여성인권과 관련한 문제들을 문화예술의 주제로 다뤄온 과정 구술. 가족법 개정과 같은 실질적 법 개정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함.


- 1946년 서울 출생 

- 서울교대 입학 후 졸업(1968) 

- 서울교대 시절 박광진 교수의 영향으로 미술을 배우고, 1967년《국전》입선

- ‘한국 근대여성 지도자 100인’에 선정

- 초등학교 교사 생활 

- 결혼, 임신, 출산 등으로 교직 생활을 그만둠 

- ‘죽음’에 대한 화두가 그림에 등장. 

- 1980년대 초, 서초동 제3화실에서, 김인순, 윤석남 등과의 작가들과 교류 

- 1982년《11인의 소묘전》

- 정문규, 유홍준 등의 도움을 받으며 본격적 작품 활동

- 1985년 관훈미술관 첫 개인전: 죽음, 상처, 회복을 주제로 다룬 작품 발표

- 1985년 ‘힘전’ 사건 뉴스 보도에 작품 등장, ‘민중, 민중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 ‘민미협’ 내 여성미술분과 활동하며, 여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문화예술운동 안으로 끌어오는 과정 

- ‘여미연’ 결성 및 활동,《여성과 현실전》참여, 한국 여성주의미술운동

- 여성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다수의 걸개그림 공동제작에 참여

- 가족법 개정과 같은 실질적 법 개정에 영향을 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