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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보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박순보
- 면담자
- 김선미
- 구술일자
- 2010년 7월 13일
- 구술장소
- 부산 전교조 부산지부 사무실
- 구술시간
- 2시간 48분 14초
구술컬렉션 > 4.19혁명 > 부산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 1943년 출생 1959년 동래고등학교 입학 1960년 4월18일 동래고 시위, 4‧19 시위 참여
- 구술내용 요약
-
구술자는 1943년 경북 청도에서 출생하여 부산 개성중학교 3학년에 전학하면서 부산으로 이주하였다. 동래고에 진학하여 2학년에 재학 중에 4월혁명에 참여하였다.4월혁명 당시 구술자는 불의에 저항하는 것이 동래고의 정신이라는 평소 선배와 선생님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던 착실한 학생이었다. 이에 4월 18일 시위가 벌어지자 다른 동래고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구술자에 따르면 이 무렵 동래고 학생들 사이에는 시위에 대한 공감대가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구술자가 속한 시위대는 시내로 진출한 본진이었다. 동래경찰서 앞에서 구술자는 붉은 물을 뿌리는 소방차를 목격하였다. 이후 구술자는 동래경찰서, 거제리, 양정, 서면을 거쳐 범일동에 이르러 삼일극장 앞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경찰과 마주쳤다. 동래고의 시위는 시내로 진출한 시위대만 해도 천 명이나 되었고 경찰의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길을 우회하기도 했기 때문에 시위대의 선두와 후미는 상당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시위대가 범일동 삼일극장 앞에 이르렀을 때 시위대는 대략 2, 3백 명 정도였다. 구술자는 이 시위대에 속하여 경찰과 육탄전을 벌였는데 이 때 동래고 운동부 학생들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리고 구술자에 따르면 이날 삼일극장 앞에서 탱크를 목격했다고 한다. 최루탄을 쏘며 강력히 제지하는 경찰의 화력에 밀려 결국 학생들은 협상으로 시위를 종료하고 학교로 철수하였는데, 이때 구술자는 시위대에 대한 선무 활동을 하는 박정희를 보았다고 한다.이듬해 부산대에 진학한 구술자는 다시 한일회담반대투쟁에 참여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서면중학교에 재직하면서 부패한 사학에서의 너무도 부조리한 현실을 목격한 구술자는 이번에는 교육개혁운동에 나서게 된다. 평교사협의회를 거쳐 전교조의 창립에 참여한 구술자는 이로 인해 교직에서 해직되었다. 이후 1980년대 말부터 범야권 단일후보로 몇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하고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였다.5. 참고자료《국제신보》《부산일보》《동아일보》《조선일보》동래고등학교, 1993, 『동래고 4‧19혁명사』부산민주운동사편찬위원회, 1998, 『부산민주운동사』, 부산시사편찬위원회박철규, 2000, 「4월민중항쟁의 전개과정-부산」, 최장집 외, 『한국민주주의의 회고와 전망』, 한가람김선미, 2010, 「부산지역 4‧19민주항쟁의 주도세력」, 『지방사와 지방문화』13-1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구술상세목록 및 녹취문
- 2010_4월혁명50주년_박순보(부산)_구술자료상세목록.pdf 71325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