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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중

구술자소개

구술자
김갑중
면담자
현대사기록연구원(박재홍)
구술일자
2010년 6월 29일
장소
덕수고등학교
구술시간
1시간 42분 8초
구술아카이브 > 4.19혁명 > 서울 관련 구술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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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내용 요약

구술자 김갑중은 대전 출생으로 대전서중을 나와 덕수상고 야간을 다녔다. 함께 배석한 어홍일은 서울 출생이다.
4‧19 이전 덕수상고 학생들은 상업학교의 특성상 학교운영(매점, 이발소 등)에 있어 학생들의 자치 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는 자연히 국내 정치상황 인식을 눈 뜨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며 3‧15 부정선거와 연이은 시위에 자극받아  학생들에게 자연발생적인 4‧19 시위로 이어지게 되었다. 
덕수상고 맞은편에 서울운동장이 있었는데 3‧15를 앞두고 '통반장 위원회의 밤' 등 행사를 하여 학교 안까지 소음이 들려와 운동장을 월담하여 '자유당 정권 무너져라' 등의 소리를 지르다 파출소에 붙잡혀 가 두들겨 맞기도 했다. 
또한 4‧19 이전 개별 학생들 간에 이루어진 모임은 학교 간 정보교류에 있어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3월 중순부터 중동,  동구여상, 강문, 동북 등 7~8개 고등학교 학생 60, 70명이 모임을 가졌고 어홍일이 대표로 참석했다. 모임장소는  수표교회였다. 수표교회 모임에는 특별한 명칭은 없었으며 '협심회'는 이 중 일부가 따로 만든 모임으로 기억한다.
구술자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정보 수집을 위해 학교 내 수위실에 형사들이 상주했다.
4월 19일 당일 덕수상고 시위는 학교 내 선생님(간부급)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1교시 끝날 때쯤 찾아온 타 학교 학생의  시위참여 독려에 자극받아 덕수상고 학생(김갑중)이 학교 비상종을 울린 후 자연발생적으로 운동장에 집결하였다. 이후 강대상의  '우리는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 시위 참여유도 선언 후 시위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시위전개과정을 보면 동대문 옆  '기동차 정거장'에서 재집결 후 종로 5가, 종로 4가, 국민대학 앞, 경무대까지 시위를 벌였다. 12시 경 경무대로 가는  도중에 동성고, 동국대, 서울사대생 시위대와 만났다.
구술자는 이기붕 집 앞 시위상황과 당시 동양극장 옆 농협에 기관포를 거치시키고 있는 장면을 증언해 주었다.  
이기붕 자택 앞에 도착했을 때 군인들이 한 쪽 무릎을 꿇고 거총하고 있었다. 그 뒤 동양극장 옆 농협이 있었는데 농협에 그  기관포를 걸고 있었고 거기도 경찰들이 다 배치해가지고 그 담 위에 총을 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밀려오면서 집 앞의 경찰들과  뒤에 총 든 사람도 사라져 버렸고 마침내 이기붕 자택이 시위대에 의해 점령이 되었다.
4월 20일 이후 계엄령 선포와 해제, 대학교수단 시국선언문에 이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 발표 상황을 지켜보고 구술자는 자신들의 시위가 정당했다는 데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지고 학생 본연의 임무인 면학분위기로 돌아갔다.

구술상세목록 및 녹취문

  • 2010_4월혁명50주년_김갑중(서울중고등학생)_구술자료상세목록.pdf 69196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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