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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사업개요
- 유화국면 이전 민주화운동 주요 사건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2차년도 과제인 '유화국면 이전의 주요 사건'은 남민전, 학림, 무림, 부림 사건을 중심으로 채록을 수행했다. 사료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에 구술 이력이 없는 인사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하여 기록의 공백을 메우고자 했다. 이번 채록은 동일 사건에 참여한 여러 관계자의 기억을 교차 확인함으로써 사건의 실체에 다각도로 접근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또한, 관련자들이 특정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고 생애 전반에 걸쳐 전개한 사회운동 이력을 포괄하여 기록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삶의 궤적과 한국 사회운동사가 맺고 있는 유기적인 연관성을 밝히고, 사건 전후의 맥락을 복원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김명인
- 면담자
- 배병욱
- 구술일자
- 2019. 8. 8
- 구술장소
- 인하대학교 구술자 연구실
- 구술시간
- 231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유화국면 이전 민주화운동 주요사건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77년 서울대학교 인문계열 입학
1979년 반유신투쟁으로 투옥
1980년 ~ 1983년 ‘무림사건’으로 구속
1984년 ~ 1991년 도서출판 풀빛 편집장 겸 편집주간
1985년 문학평론가 등단
1992년 ~ 1998년 인하대학교 대학원 석‧박사 졸업
1999년 ~ 황해문화 편집주간
2005년 ~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 구술내용 요약
-
김명인은 1958년 강원도 삼척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4세에 서울로 이사하였고, 부친의 광업이 실패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다. 1971년 휘경중학교, 1974년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1977년 서울대 인문계열에 입학하였고, 문학비평에 뜻이 있어 국문과를 택했다. 입학 후 인문대 역사철학회와 지양편집실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학년 때 인문대생을 선동하여 교련수업을 거부하는 시위를 주도한 적도 있었다.
유신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서울대생들은 76학번부터 각 단대 써클의 2학년 학생 중 핵심적 인물들을 모아 비밀학생운동 조직 ‘언더’를 운영하였고, 동기들 중 특히 적극적인 소수의 학생은 ‘언더 지도부’가 되어 다음 기수의 교육까지 맡았다. 김명인은 77학번 ‘언더’(77언더)의 멤버가 되었고, 조직 내 핵심적 사안을 논의하면서 ‘78언더’를 교육하는 ‘77언더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다. 이들을 지도한 76학번의 대표적 인물은 이원주였다.
김명인 외 ‘77언더 지도부’에는 현무환과 최영선이 있었다. 이들은 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 건설을 주도하였고, 5월 15일 서울역에 집결한 10만의 학생 시위대를 통솔하여 신군부의 집권을 저지해야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대규모 인파의 시위를 접하자 이를 통제할만한 역량과 여건을 갖추지 못했던 언더 지도부는 총학생회장들의 해산(서울역 회군)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이는 광주학살로 이어졌다.
80년 2학기가 개강하자 언더 지도부는 소모적 시위를 자제하고 81년 신군부와의 전면전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서울대의 침묵에 대해 즉각행동을 요구하는 목소리들도 높았는데, 그 회답 차원에서 벌인 시위가 12월 11일 시위였다. 이날 시위의 성명서 ‘반파쇼학위투쟁선언’을 작성한 김명인은 학생운동 조직 내 소모적 논쟁들을 종식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학생운동의 방향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이는 경찰 당국에 의해 서울대 운동권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조직사건으로 비화되었으니, 이른바 ‘무림사건’이다. 특히 김명인은 성명서 작성자이기에 가장 무거운 형을 받았으며, 취조 과정에서 만난 이근안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무림사건의 배경이 된 1980년 12월 11일 시위의 준비과정과 김명인이 작성한 ‘반파쇼학위투쟁선언’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