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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욱
사업개요
-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3차년도 과제인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구술 채록은 그동안 관념적 이해되고 알려졌던 학생운동가들의 고민과 활동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구술 대상은 1980년대 유화국면 이후 ‘MT-MC 논쟁’ 시기에 활동한 학생운동 지도부를 중심으로 선정했다. 특히 공개 조직 외에 언더 및 배후에서 주요 방향 설정과 의사결정에 참여한 핵심 인물들을 포괄했다. 서울대를 비롯하여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서강대 등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5개 대학의 77~82학번 인사들을 대상으로 채록을 수행하여, 당시 학생운동의 내부 논리와 전개 과정을 기록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강동욱
- 면담자
- 정용인
- 구술일자
- 2020.11.6.
- 구술장소
- 현대사기록연구원
- 구술시간
- 168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80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1985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92 제정구 의원 비서관
1997 사법시험 합격(제39회)
2000~현재 광주지방변호사회 변호사 개업, 법률사무소 공명
2020 광주대학교 부동산학 박사학위 취득
- 구술내용 요약
-
광주일고 다닐 당시 15개 남녀 고등학교 연합서클인 흥사단아카데미 활동을 열심히 했다. 형은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서울대 철학과를 다녔고,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공부를 뒷받침하기 위해 집을 정리하고 서울에 올라와 중국집을 운영했다. 종로학원 재수생 시절 5.18이 일어났고, 재수생들 중 광주 출신들이 모여 광주에 내려가려고 했지만 항쟁이 끝나 무산된 일이 있었다.
대학 진학 후 농법회에 가입했고, 3월 19일 첫 데모부터 열심히 참여했다. 덩치가 작고 빠른 편이어서 잘 도망가는 편이었다.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고민하다가 대학 2학년 때 2주간 혹독히 농활을 다녀온 뒤 사회변혁을 위해 인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80학번에 이어 81학번 법대 포스트가 되었고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조직사건을 일으켜 사람들을 잡아가면 운동 바람이 꺼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학생운동이 사회변혁에서 중심적으로 역할을 한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그리 흔하지 않는 사건이다. 박종운은 자기네가 다 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단식으로 몸무게를 빼서 군대 문제를 정리하고, ‘새로운 인식과 실천방향’과 같은 문건을 통해 깃발을 통해 별도의 투쟁조직 필요성을 주장하던 MT그룹을 비판했다. 삼민투가 한 미문화원 점거 농성도 우리가 주도한 투쟁이었다. NL-CA국면으로 넘어가면서 종전의 Po시스템은 1985년도에 해소되었다.
학교생활 이후 신광표 형광등에 취직하는 한편, 인천 지역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6월 항쟁 후 이전부터 인연이 있던 제정구 의원실에 들어가 입법보좌관 일을 했고, 광주에 와서 변호사 일을 하게 되었다. 당시 운동 내부의 갈등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군사독재정권의 불법성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개인적인 고민과 결단 이후 인생투신을 존중해야 한다. 개인사적으로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우리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유화국면에서 MC와 MT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경위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