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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박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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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박문식
면담자
신동호
구술일자
2020.11.11.
구술장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의실
구술시간
161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77 마포고등학교 졸업

1977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입학

1978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 진학

1978 서울대학교 사회대평론 편집실 편집위원 활동

1978 서울 강남구에 있던 영동야학에서 강학으로 활동

1978 서울대학교 기독교학생회에서 활동

1978.09 유신반대 학내, 교외시위 참가하다 체포돼 노량진경찰서에서 1개월 구류, 한 학기 유기정학 처분을 받음

1979.11-1980.03 학생회부활추진위원회 조직. 추진위원장으로 활동

1980.05.17 계엄확대 예비검속 조치로 합수부에 연행돼 폭행과 고문을 당하고 같은 해 8월 14일경 기소유예로 석방됨

1980.07 서울대학교에서 학생제명 처분됨

1981.06.20 전국민주학생연맹사건으로 대공분실에 연행. 한 달여간 불법연행된 상태에서 고문과 폭행을 당함. 1982.09 대법원에서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 선고받고 복역 중 1983.12 형집행정지로 석방

1985.05.-07 반월공단 일성밧데리, 인천 대성목재 등에 취업해 임금인상 시위를 주도하고 노동자 해고 반대 등을 주장하는 유인물 등을 살포하다 인천경찰서 등에 체포돼 세 차례 구류를 살고 석방됨

1985.10 소위 ‘민추위’ 사건의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돼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88.10 형집행정지로 석방됨

1989.08-1990.01 노동운동 제 정파의 합의로 출발한 주간노동자신문 창간에 참여하고 기자로 활동

구술내용 요약

서울에서 태어나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자랐다. 법대에 가려고 서울대 사회계열 지망했으나 ‘유신법대’가 싫어서 경제학과를 선택하였다. ≪사회대평론≫과 영동 검정고시 야학을 하면서 사회의식에 눈떴고 학회(이념서클)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3학년 때 학생운동을 할 생각으로 기독학생회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10.26사태 후 학생회 부활 작업을 주도하면서 학생운동권과 인연을 맺고 학생회장 간접선거 문제로 언더 지도부와 갈등하기도 했다.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 후 전민학련 조직 제의를 받고 중앙위원으로 참여, 지부-지회-지반을 조직하고 조직원의 세미나를 지도하였다. 1981년 전민학련 조직을 중심으로 각 대학 시위를 지도, 지원하면서 국풍81 공간을 활용하여 횃불시위 등 대규모 반정부 투쟁을 준비하던 중 학림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출소 후 인천에서 노동운동으로 진로를 정하고 준비, 활동하면서 무너진 학생운동 재정비를 위한 지원을 한 것이 빌미가 돼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에 또 다시 연루되었다. 복역 중 후배 운동권의 요구로 자기비판을 하게 되고 공식적으로 모든 운동에서 손을 끊으라는 결정을 수용하게 된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인천노투와 민추위의 관계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