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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박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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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박종운
면담자
정용인
구술일자
2020.9.29.
구술장소
현대사기록연구원
구술시간
219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81~1985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문학사)

1998~2000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학 전공(행정학석사)

2014~2016 연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박사과정 수료

1981~1990 학생운동, 노동운동

1991~1992 군필

1995~2000 서울시 강동구청장 비서실장

2000~2009 한나라당 부천시 오정구 당협위원장(2000, 2004, 2008국회의원출마)

2004~2006 국회의원 모임 ‘국가발전전략연구회’ 사무총장

2006~2008 경기도 경제단체연합회 사무총장

2009~2014 경기남부도로(주) 상임고문

구술내용 요약

청주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 때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농사를 도와드렸다. 대학 진학에 실패해 직업 전선에 들어갈 생각도 했으나 재수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박정희의 경제성장을 옹호하는 생각을 했고, 입학할 때까지도 데모할 생각은 없었다. 

대학 진학 후 사회대평론에 가입해 토론 공부를 했고, 5월 27일 운동권도 아니었던 전라도 광주 출신의 김태훈 학형의 죽음을 목격하고 충격 받아 운동을 삶과 죽음의 문제로 생각하게 되었다. 일제시대와 한국의 근대를 수탈과 착취로 인식한 마르크스주의에 입학한 책과 논문들을 보고 당시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지도적인 위치에 올라선 3학년과 4학년이 되어서는 군사독재정권에 좀 더 타격을 가할 수 있도록 운동 조직의 실천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는 전통적으로 Po시스템이라고 하는 단과대별 동원체제가 있었는데, 보다 기동적인 조직 형태가 필요하다고 봐서 동료들을 설득했다. 내가 속해있던 대문의 시각이 학생운동을 이끄는 사람들 내에서 주류가 되었고, 그런 문제의식을 담은 <깃발>을 배포했다. 우리와 반대 입장에 있던 기존의 주류(MC)가 우리의 문제제기로 퇴조한 뒤 주사파가 나타났다.

CA로 넘어가는 시절 나는 노동현장으로 투신해 도바리 생활을 했다. 학교 후배 박종철 후배의 집에 들려 후배들을 모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도바리 중 신문에서 고문치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백태웅, 박노해 등과 <선봉>을 만들었고, 방위로 군생활하고 그동안 수해해제가 되었다. 그후에는 전국노운협에 들어가 기관지를 만드는 일을 했다. 이회창 밑의 이명우가 연락이 와 원희룡, 정태근 등과 함께 한나라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자유민주주의 학생운동을 하겠다. 개인사가 들어간 이런 진술을 한 것은 처음이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유화국면에서 변화된 학생운동 양상과 학생들의 인식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