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Embed 퍼가기
하단의 내용을 복사해서 퍼가세요.
URL 퍼가기
하단의 내용을 복사해서 퍼가세요.
이메일 공유
박래군
사업개요
-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3차년도 과제인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구술 채록은 그동안 관념적 이해되고 알려졌던 학생운동가들의 고민과 활동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구술 대상은 1980년대 유화국면 이후 ‘MT-MC 논쟁’ 시기에 활동한 학생운동 지도부를 중심으로 선정했다. 특히 공개 조직 외에 언더 및 배후에서 주요 방향 설정과 의사결정에 참여한 핵심 인물들을 포괄했다. 서울대를 비롯하여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서강대 등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5개 대학의 77~82학번 인사들을 대상으로 채록을 수행하여, 당시 학생운동의 내부 논리와 전개 과정을 기록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박래군
- 면담자
- 신동호
- 구술일자
- 2020.9.29.
- 구술장소
- 현대사기록연구원
- 구술시간
- 200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2003년 노무현 선대본 전략기획
2003년 행자부 장관 정책보좌관
2005년 국립해양연구원 상임감사
2007년 주) 경남 파워 상근 감사
2012년 김두관 대선 캠프 총괄
2013년 국회소속 사단법인 돌바내 운영위원장
- 구술내용 요약
-
부산에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으나 주변 기층민중의 삶과 고교 시절 교육 영향으로 사회의식에 일찍 눈을 떴다. 서울에서 재수하면서 서울의 봄과 5.18민주화운동을 겪으며 저항의식을 키웠다. 고려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여러 운동성 서클에 참여해 구성원과 관계를 형성하였다.
1981년 1학년 때 5.20시위 후 이념서클 대상 시위 동원의 한계를 뛰어넘어 학과 중심의 동원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경제학과 학회 창설에 참여하였다. 고려대 내 최초의 학회로 생각되며, 이를 시작으로 운동권 학회와 서클 조직이 확산되어 학내 학생운동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1학년의 문무대 입소 시위, 이른바 109인사건을 계기로 이듬해 정경대 비합법 언더모임에서 집중적으로 학습하였다. 2학년 겨울방학 때는 80학번이 중심이 되어 등록서클과 학회, 지하서클을 망라하는 단일대오를 구축하는 시도가 있으나 3.7사건으로 학내 운동을 주도하던 겨레사랑회(겨사) 지도부가 대거 강제징집되었다. 그 여파로 고려대 학생운동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겨사그룹의 독선적 운영이 문제가 되어 학내 운동권이 겨사 대 비겨사로 분화되는 흐름이 생겨났다.
새로운 학생운동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조직한 것이 문학연구회(문연), 정경대, 문과대, 법사경, 애기능 등 5개 섹터로서, 여러 언더팀 포스트와 주요 사안을 논의하고 조율하는 전체 지도부 역할을 담당하였다. 1984년에는 문과대와 정경대의 비겨사 언더연합체의 중심(CT) 역할을 하게 되는 이른바 문정그룹을 조직, 유화국면 시기의 투쟁 방향 설정과 활동을 주도하게 된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고려대 학생운동에 미친 서울대 MT-MC논쟁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