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김성순

  • 공유하기

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김성순
면담자
정호기, 이명진
구술일자
2021.6.28.
구술장소
경북 김천시 덕천포도원
구술시간
73분

구술컬렉션 > 농민운동 > 80년대 농민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29 경북 김천군에서 출생

1943-1949 대구사범 입학, 1945년 심상과 3학년 휴학 후 대구 칠성초교 교사 부임. 이후 복학했으나 졸업하지 못함

1949.6경-1951.4 김구 선생 암살에 분개해 유인물을 제작, 배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0개월 미결 상태에서 한국전쟁을 맞음. 1951. 4. 석방

1951-1958 군 복무. 3년은 공군 기술하사관으로 근무 후 불명예제대. 다시 사병으로 입대하여 제20사단 통신부대에서 4년 3개월간 근무

1958 제대 후 아버지가 일군 농토에서 농사

1960 포도 농사 시작

1974 전국농업기술자협회 주최 제15회 전국농업기술자대회 본상 수상

1976 크리스천아카데미 농촌교육 제1차 9기 이수

1978-1981 한국가톨릭농민회 회원, 이사, 감사, 경북 총무, 함평고구마사건 10일 단식농성

1979 안동농민회 사건 항의로 안동경찰서에서 구류 20일

1980 (사)한국포도회 창립멤버, 부회장(1대), 13년 간 회장(2-6대) 연임

1982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 감사, 운영위원, 부회장. 경북농민회 회장

1988 전국농민단체협의회(전농협) 회장

구술내용 요약
김성순은 1929년 경북 김천면에서 출생했다. 출생한 이후 1970년대 활동에 관한 개괄적인 사항은 2010년 9월 2일에 이루어진 구술채록에서 정리한 바 있다. 1960년 3월 12일부터 포도농사를 시작했고, 1970년 초 현재의 장소로 이사해 포도농사를 지었다. 유달영이 재건국민운동본부 회장에 재임하던 시기에 인연을 맺고 영향을 받아 다양한 사회활동을 전개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재건학교 운영과 새마을금고의 설립이었다. 재건학교는 2년간 운영되었고, 김천새마을금고는 오늘날까지 운영되고 있다. 포도재배기술을 어렵게 습득했으며, 일본에서 품종을 어렵사리 도입해 한국에 확산시켰다. 포도재배기술을 배우러 온 한 젊은이를 통해 기독교에 입문했다.
함석헌으로부터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 강정규, 최완택, 이현주의 인연으로 1976년에 크리스찬아카데미 제1차교육 9기로 이수했다. 이 교육을 받은 후, 한국가톨릭농민회 한마음분회를 결성했다. 한마음분회는 안동교구의 영향과 지원을 받았다. 1978년에는 한국가톨릭농민회 경북 총무여서 함평고구마사건 단식농성에 참여했다. 8일간의 단식농성을 마치고 해단식에서 발표한 성명서를 작성했다. 1979년 오원춘사건으로 8월 15일 20일간의 구류처분을 받았다. 정농회와의 인연은 1980년대 초에 오재길을 통해 형성되었다. 정농회와의 인연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중단되었다. 최종진의 권유를 받고 가톨릭농민회에서 기독교농민회로 활동 영역을 전환했다.
을류농지세 투쟁은 포도농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농협민주화는 군사정권의 유산을 극복하는 일이었는데, 난관이었다. 당국은 농민운동을 감시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을 정보원으로 활용했다. 면에서도 주시했고, 다니던 교회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1987년에는 경북기독교농민회 회장을 하는 등 다양한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나, 현재는 구체적인 활동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가톨릭농민회는 중심을 갖고 유지되었던 반면, 기독교농민회는 해산하여 안타깝게 생각한다. 1988년에는 전국농민단체협의회 회장도 역임했으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농민운동의 어려움과 애환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