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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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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김정순
면담자
양라윤, 정호기
구술일자
2021.6.2.
구술장소
광주시 광산구 비정규직지원센터 회의실
구술시간
213분

구술컬렉션 > 농민운동 > 80년대 농민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51 전남 강진군 출생

전남공업고등학교 졸업

1972-1975 군복무(강원도 양구 소재 의무대) 

1975 농업에 종사

1977.12 크리스천아카데미 제1차 교육 15기(12. 6. - 10.)

1978 전남기독교농민회 결성, 서기

1979.1.11 한국가톨릭농민회 강진군 만년분회 결성, 회원

1982.3.18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 결성, 서기

1983.3.15 강진기독교농민회 결성, 회장

1984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권익실천분과위원회 위원장

1986 전남기독교농민회 회장

1989.5 강진군농민회준비위원회 교육부장

1991-1993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라남도연맹(1990. 5. 11. 결성) 정책실장

구술내용 요약

김정순은 1951년 9월 14일(음력)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연마을에서 출생했다. 안산 김씨 집성촌 마을이었으며, 주로 쌀농사를 지었다. 도암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도암면에서 자취했고, 광주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3 말에 공장에 취직을 했는데, 기계 오일 냄새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 진학을 위해 광주에서 공부하다 그만두고 1972년 군대에 입대했다. 군대 제대 이후, 신평교회를 다니던 후배 김규식, 윤재경의 권유로 1975년 말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고 청년회 활동을 했다.

윤기현의 소개로 1977년 12월 6일부터 10일까지 크리스찬아카데미 교육을 이수했다. 1차 교육 15기로 성북구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 근처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농민 문제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농민운동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선교교육원 모임에서 전남지역 기독교농민회 조직화 문제가 구체화되었고, 전남기독교농민회 결성 준비를 위한 모임이 이뤄졌다. 김정순은 나상기의 권유로 전남기독교농민회 준비위원회부터 서기로 활동했다. 1978년 3월 8〜9일 전남기독교농민회가 결성되었다. 이후 전남기독교농민회는 각 지역의 기독교농민회 결성을 위한 교육과 지원 활동을 전개했다. 

1980년 5월 2일 전북기독교농민회가 결성되었고, 1981년 2월 15일 충북기독교농민회가 결성되었다. 전북지역은 4-H 활동을 했던 임수진이 중심적으로 활동했으며, 충북은 덕촌교회를 중심으로 주요 활동가들의 참여가 이뤄졌다. 기독교농민회 조직화에는 민청학련사건 관련자들의 논의가 초석이 되었고, 학생운동 출신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배종렬, 정광훈, 최종진 등 농민운동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지원이 더해져 1982년 3월 18일,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이 결성하게 된다. 이때도 김정순은 준비위원회부터 서기를 맡아 참여했다. 1982년 강진군기독교농민회가 창립되었고, 김정순은 회장을 역임한다. 

1983년부터 함평군, 고창군, 임실군, 서천군 등 군 단위 지역별로 기독교농민회가 결성되었으며, 김정순은 강진군, 전라남도, 전국 모임에 참여했다. 1984년 9월 2일 함평‧무안농민대회는 기독교농민회 역량이 총결집되고, 함평의 노금노, 무안의 배종렬, 김홍재 등의 인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85년 미국농축산물수입요구 규탄대회와 미국대사관 진입사건이 있었다. 김정순은 기독교농민회 과제실천분과위원장으로 대책회의를 진행했고, 4월 23일 미국대사관 진입 작전을 세우게 된다. 미국대사관 직원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기습적인 진입을 시도했고, 플랜카드를 펼치고 농민가를 부르며 시위를 진행했다. 이 사건으로 20〜30명이 종로서로 연행되었다. 1986〜1987년 전남기독교농민회 회장을 역임했다.

1987년부터 일반 농민대중을 대상으로 단일조직을 구성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졌고, 1988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이 이뤄지면서 10월 31일 전국농민단체협의회가 결성되었고, 1989년 3월 1일 대전 가농회관에서 전국농민단체연합이 결성되어 통합을 위한 활동이 이뤄진다. 1990년 4월 24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이 결성되었고, 5월 11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라남도연맹이 결성되었다. 각 군 단위별로 지역적 차이나 특징이 있었지만, 농민대중 조직으로 나가야 한다는 공유된 논의가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1991년부터 전남도연맹 정책실장을 역임하며 정책실의 사업계획, 교육정책, 일정 등을 세워 활동했다. 1994년에는 다시 강진군으로 내려와 군 농민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했으나 1997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농민운동을 그만두게 된다. 혁명을 꿈꾸며 농민운동에 투신했는데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김정순에게 농민운동은 삶의 모든 것이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농민운동을 하게 된 계기, 기독교농민회 결성의 필요성, 기독교농민회의 해산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