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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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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고송자
면담자
양라윤, 정호기
구술일자
2021.7.2.
구술장소
전남 무안군 여성농업인센터
구술시간
158분

구술컬렉션 > 농민운동 > 80년대 농민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49 전라남도 신안군 출생

1966 목포로 이주(편물학원 공부)

1967 상경

1974 24살에 결혼, 무안군으로 이주

1988 고추싸움을 계기로 여성농민운동 시작. 고추대책위원회 위원장

1992 무안군여성농민회 초대 회장

1994-1995 전국여성농민회 전남연합 회장

1997-2000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 회장

2002-2005 우리농산물지키기 광주전남운동본부 공동본부장

2002-2005 무안군 현경면 수양리 이장

2006-2010 전라남도의회 제8대 도의원(민주노동당 비례대표)

2020-현재 무안군 여성농업인센터 제5대 센터장

구술내용 요약

고송자는 1949년 전남 신안군에서 출생했다. 4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나 책임감 강하게 자랐다. 가난한 집안의 가세를 일군 할머니의 가르침과 영향이 컸다. 1974년 중매결혼을 해서 무안군으로 이주했다. 고향에서는 농사를 크게 짓지 않았기 때문에 떼밭을 갈아 농사짓기가 매우 어려웠다. 무엇보다 수확한 농작물의 제값을 받지 못하고, 수매상의 횡포에 시달리는 것이 괴로웠다. 

1980년 중반까지 농사를 지었지만, 농민운동이나 농민대회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한 동네 주민이었던 대학생 박진우가 농민교육에 참석해보길 권했고, 그를 따라 해남교회에 가서 처음 교육을 받았다. 1987년 마을‧양파투쟁을 할 때, 농민대회에 처음 참가했다.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농민운동가들을 보며 농민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1988년 고추의 과잉 생산으로 고추값이 떨어지고, 정부의 전량 수매가 이뤄지지 않아 농민들의 불만이 커졌다. 농협에서는 일부 주민들의 고추만 몰래 수매해서 주민들의 공분을 샀다. 수양촌 부녀회원들에게 불만만 하지 말고 직접 가서 따져보자 하자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현경농협 앞에서 수양촌 부녀회원들의 집회가 있고 3일 후에 농협으로부터 전량 수매 약속을 받아냈다. 정부의 수매 분량 22톤 중에서 무안군에 12톤이 배정되었는데, 수양촌에 9톤을 수매하기로 결정됐다. 고추싸움이 성공을 거두자 부녀회원들은 용기가 나서 나머지 고추수매를 위해 다시 한 번 집회를 열기로 한다. 12월 5일 경운기에 고추를 싣고 정부의 전량수매를 요구하며 무안군청으로 향했다. 무안군청 앞마당에 고추를 쌓아놓고 시위를 하다가, 눈비를 피해 고추 포대를 군청 안으로 옮기며 점거농성을 하게 됐다. 3〜4일 후, 무안군청이 고추 전량 수매를 약속했다. 수양촌 고추싸움이 성공을 거두자 주변 지역 고추를 수매하기 위한 2차 대책위원회가 조직되었고, 이 과정에서 경찰과 백골단이 투입되어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2차 고추싸움까지 전량 수매라는 결과를 받아내었고, 수양촌의 고추싸움을 시작으로 고추싸움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고추싸움 이후 무안군여성농민회 조직 논의가 확산되었다. 현경면여성농민회를 먼저 결성하고, 운남면과 현경면 여성회원들을 포함하여 무안군여성농민회 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980년대 후반 무안군 여성농민회는 수세폐지운동, TV시청료 거부운동, 의료보험투쟁 등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1992년 무안군여성농민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고, 1994〜1995년 전국여성농민회 전남연합 회장을 맡았다. 1997〜2000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현장 여성농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노력했다. 전여농 회장직을 마치고 다시 무안으로 내려와 우리농산물지키기 광주전남운동본부, 수양리 부녀회, 전라남도의원, 여성농업인센터에서 활동하면서 농촌과 여성농민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농민들에게 농민운동은 꼭 필요한 것이기에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할 수 있을 때까지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1988년 고추싸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 회장으로서 마늘싸움 전개
녹취문